기획스토리

2024년 09월

중보기도의 지경을 넓히고, 역사하심을 체험하자!

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요즘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사랑의교회 중보기도실로 향하고 있다. 들어가면 기도제목이 잔뜩 담긴 태블릿 PC를 받아 들고 개인 기도실에서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제목부터 담임목사, 부교역자, 선교사,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까지 1시간을 꼬박 기도하고 나온다.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둔 부모님, 취업이 간절한 아들, 사업의 부도에 직면한 남편, 재수생 자녀의 수능 시험, 부부 갈등, 자녀의 우울증 치료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절로 감정 이입이 된다.


이 같은 중보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다. 영어로는 ‘intercession’으로 표기하는데, ‘사이’, ‘간격’, ‘협력’이라는 뜻의 ‘inter’와 ‘이양하다’, ‘양도하다’라는 뜻의 ‘cession’이 합쳐진 단어다. 즉, 이쪽과 저쪽 사이에 위치해 서로를 연결한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 사이에 서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성경을 살펴보면 중도기도를 하는 한 사람,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나라와 도시가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서를 통해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시며, 자신의 뜻을 막아설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통탄하신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 22:30). 또한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소돔성을 위해 간구하지만 끝내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한 소돔성은 멸망한다(창 18:32).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별점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신에게서 간구해 얻어 내려는 종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종교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라고 말할 정도로 ‘기도’를 우선시했다.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중보자가 되시지만, 다른 이의 삶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하는 모든 사람은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다.


모세와 아론은 고라 자손의 반역에 맞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민 16:45).


‘중보기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즈 하월즈는 “그리스도의 몸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통하여 우리는 낮아져 그분의 방 앞에 엎드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리즈 하월즈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영국이 위기에 처하자,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지금은 기도할 때이다”라고 외치며 기도의 지평을 민족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기도를 통해 1904년 영국 웨일스에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역사하는 통로로 자신이 사용되길 간구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무슨 일을 하시고자 하실 때는 누군가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 우리도 기도의 지평을 넓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통로로 쓰임받아야 한다.


이에 <디사이플> 9월호에서는 “중보기도로 내 신앙과 교회 공동체를 다시 되살리자!”라는 기획 주제를 통해 중보기도의 의미와 유익, 담임목사의 기도 깊이가 교회의 기도 깊이와 너비를 좌우하는 사례, 중보기도를 통해 성도의 영성이 깨어나고 교회 공동체가 생명력 있게 살아나는 방안, 기도 대상자의 기도제목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중보기도자와 하나님의 뜻까지 바꾸는 중보기도의 놀라운 은혜를 살펴보고자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