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인디언 한 부족의 늙은 추장이 하루는 손자를 앉혀 놓고 인생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추장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선악의 갈등을 늑대의 싸움으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얘야,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듯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싸움이 일어난단다. 한쪽에는 악이 있는데, 교만, 정욕, 분노, 미움, 시기, 질투, 열등감, 거짓말, 자존심, 강한 나 중심의 자아가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선이 있는데, 그 안에는 기쁨, 사랑, 겸손, 친절, 너그러움, 용서, 믿음이 있다. 그런데 매 순간 이 둘은 싸운단다.” 이에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그러자 할아버지 추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단다.”
제자훈련 1년, 사역훈련 1년, 총 2년의 긴 훈련 과정을 마친 수료생 중에는 예수님을 닮아 가는 모습이 나타나기는커녕 다시 육신의 정욕이 살아나고, 죄의 소원에 무릎 꿇고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라는 말씀도 암송했건만,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롬 8:12) 삶에 굴복할 때가 많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랑을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조차 주저하고 겁내는 경우도 많다. 제자훈련만 받으면 진짜 제자가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육신대로 사는 모습에 실망한다.
과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 중 고(故) 옥한흠 목사는 “항간에 제자훈련과 관련해 몇 가지 편견이 돌고 있다”며, “그 편견 중 하나가 바로 ‘제자훈련에는 성령 충만함이 없다’라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옥 목사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인도자인 목회자와 훈련생 12명이 소그룹 안에서 찬양과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던 삶의 애환을 나누다 보면 성령의 격려와 위로, 임재하시는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말씀 중심의 제자훈련에 계속 성령 사역을 접목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인도하는 훈련 목회자의 성향에 따라 성령 충만한 훈련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그저 과제물을 제출하기 급급한 메마른 훈련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와 3년 동안 제자훈련을 하셨다. 무시로 말씀을 가르치셨고,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법도 알려 주셨다. 둘씩 짝지어 복음을 전하는 현장 실습도 병행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며, 무기를 하나 주시는데 그게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루살렘교회와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파해 나간다. 바로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성령님이 이끄는 제자훈련이 돼야 하고,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디를 가고 무슨 사역을 하든,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죄에 지지 않고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디사이플> 12월호에는 “제자훈련과 성령 충만함이 함께할 때 온전한 제자로 서게 된다”라는 기획 주제를 통해 제자훈련과 성령 충만함이 함께할 때 능력이 임하고, 훈련 중 성령님 알기를 힘써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는 훈련, 성령님과 함께 춤추는 제자훈련이 돼 훈련생이 능력 있는 제자로 서게 하는 법, 말씀과 기도훈련을 통해 성령 충만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는 내용을 담아 봤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