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는 강화도의 화문석(花紋席)과 무문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교수는 화문석이 꽃 모양을 놓아 짠 돗자리로 얼핏 봐도 정성을 들여 색깔별로 무늬를 넣었기에, 화문석이 아무런 무늬가 없는 무문석보다 가격이 더 비쌀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문석이 화문석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 물어보니, 재미있는 답이 돌아온다. 화문석은 무늬가 있어 만드는 사람이 신이 나 짜는 재미가 있지만 무문석은 무늬가 없어 과정이 고되고 힘들기 때문에 더 비싸다고 한다.
매달 잡지를 만드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잡지(magazine)라는 단어는 ‘창고’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비롯됐다. 이 말은 잡지가 여러 가지 글이나 내용, 사진 등을 한데 묶은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디사이플>이라는 잡지는 창고 안에 저장된 물건의 종류가 ‘제자훈련’이라는 한 가지밖에 없다. 한마디로 단순하다. 신나고 재미나며 화려한 화문석이 아니라, 색도 하나이고 무늬도 없는, 그래서 짜는 내내 지루하고 힘든 무문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20년은 무문석 같은 <디사이플>을 힘들었지만 화문석같이 신나게 짠 시간이었다. 그렇게 2023년 <디사이플> 11월호는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실제로 <디사이플>의 제작 과정은 고되고 힘들다. 매달 ‘제자훈련’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독자에게는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곰탕을 끓이는 한 가지 방법, 즉 끓이고 또 끓여서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는 깊은 맛을 낼 수도 있지만, 때론 곰탕의 재료에 더 맛난 재료를 넣거나 불 조절을 통해 더 맛있게 끓이기도 해야 하는 과제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생존만을 위해 <디사이플>을 만들면 고역이지만 과정의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제작하면 의미와 보람을 건질 수 있다.
그동안 <디사이플>은 제자훈련 목회자들로 하여금 제자훈련 실전 안내서, 제자훈련 목회자들의 사랑방, 제자훈련의 증언자, 제자훈련 사역자의 친구이자 벗, 충성된 문서 동역자 등의 찬사를 받아 왔다. 그러나 분명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디사이플>의 창간과 함께 필진으로서 제자훈련 모델 교회가 됐던 목회자 중에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거나, 목회를 은퇴한 이들도 늘고 있어 아쉽다. 시간이 흐르는 물과 같이 지나간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되는 요즘이다.
<디사이플>이 앞으로 창간 30주년을 맞이하는 때는 2033년 11월호이다. 사실 제자훈련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품고 무문석을 짜 온 지난 20년 동안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디사이플>이 30주년을 맞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자훈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본질적인 사역이라면, 독자의 많고 적음이나 주제의 다양성을 떠나 오늘도 힘들게 교회 현장에서 제자 삼는 사역에 모든 것을 걸고 훈련하는 사역자에게 아직은 길 안내자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을 위해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간다는 마음으로, 주님 닮은 한 영혼을 세우는 본질을 붙잡으며, 30주년을 향해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려 한다.
이에 <디사이플> 11월호에는 행복한 제자훈련의 이미지를 열심히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감당한 <디사이플>의 의미와, 제자훈련과 목회의 보물 창고로서 <디사이플>을 활용하는 법, K-제자훈련 국제화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제자 삼는 사역의 동반자로서 <디사이플>의 발자취와 지난 20년간 베스트 기사 20개를 선정하고, 애독자들의 <디사이플> 창간 20주년 축사를 모아 봤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