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12월의 겨울보다 1, 2월의 겨울은 왠지 길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빨리 봄이 오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서점에 갔다가 재밌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들』이라는 책이었다. 내용보다는 책 제목에 끌렸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흥미로운 일, 뭔가가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라면, 정거장, 매표소, 백화점, 카페, 공원 벤치, 복도, 로비, 응접실, 기차역 대기실 등에 서 기다릴 때를 말한다. 어떤 장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라는 소리를 간혹 듣는다. 그 말은 나만 빼고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고, 때론 지루함과 한숨, 무능력을 동반한다.
사실 이런 장소에서 기다림이야 참을 만하지만, 일상에서 변화가 없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더욱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점심 먹고 또 일하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밥 먹고 자는 일상의 반복은 뭔가 재미있는 탈출과 변화를 위한 성장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올해가 지나고 또 다른 한 해가 오면 뭔가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우리 안에 있다. 실제로 ‘기다린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두 사람이 고도를 계속 기다리다 끝나버린다. 사랑하는 사람, 결혼,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 여행을 기다리는 등 우리는 무언가를 항상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런데 기다림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시간만 죽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컴퓨터 부팅 시간 30초를 기다리기 힘들고,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이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시간도 길게 느껴져 무단횡단을 하거나 버튼을 자주 누르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특히 끝이 없는 불확실한 기다림, 원인 모를 기다림, 부당한 기다림, 혼자 견디는 기다림은 더 길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기다림은 마음가짐의 문제인 것 같다. 기다리는 것은 보통 불만스럽고 지루하며, 시간만 잡아먹고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희망적인 기대감도 있다. 돈, 건강, 사랑 등 눈에 보이는 기다림뿐 아니라, 시련의 아픔이 치유되고 병이 완치되기, 좀 더 성숙한 사람 되기, 실패나 고통의 순간이 사라지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순간들이 더 많다.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삶을 숙고해 볼 수 있다.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기다림의 순간은 사실 놀라운 삶의 통찰력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 시간에 인생의 방향을 바꿔야 할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전환할지, 되돌아갈지 아니면 직진할지, 고백할지 침묵할지를 결정하는 등 발전적인 질 문과 관점을 묵상하고 선택해야 한다.
추운 겨울이 영원히 오래갈 것 같지만, 반드시 3월은 오고 꽃은 핀다. 교회와 사역의 현장,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상처가 생겨 생살을 찢는 듯한 고통에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에는 치유하시고, 싸매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희망을 갖고 기다려보자.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