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다사다난한 해였던 것 같다. 어느 교회는 사역이 잘 정착돼 행복의 미소를 짓기도 하고, 또 어느 교회는 잘되던 사역이 어그러져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교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봐도 연초 계획한 대로 연말에 열매를 모두 거두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그러려면 스스로 부지런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의 은혜도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0대 때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방문한 경주 석굴암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신비로운 그 모습에 그저 감탄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산 중턱에 도대체 누가 저 돌을 옮겼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무만 가득한 산 위에 저렇게 큰 돌이 있을 리 만무하고, 누군가 산 위까지 죽을 둥 살 둥으로 옮겨 조각해 놓은 것이 석굴암일 테니 말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존경스러웠다.
20대 때 중국 만리장성을 걸으며, 도대체 이 높은 산꼭대기에, 어떻게 그 긴 거리를 돌로 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 중에서 가장 길다는 만리장성은 아직도 그 길이를 정확히 측량할 수 없어 지구 둘레의 8분의 1에서 7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은 산 정상에 돌을 옮겨 긴 거리를 둘러 성을 쌓았다는 것만 생각해도, 많은 사람의 수고가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40대에 가 본 이스라엘 곳곳의 교회 터들을 보면, 높은 광야의 꼭대기에 이오니아 양식의 거대한 기둥들과 아치의 키스톤, 커다란 벽돌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어떻게 저 높은 곳까지 돌을 옮길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유대인들이 로마군과 마지막까지 항전했다던 광야 꼭대기에 만든 마사다의 요새 역시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곳이다. 저 높은 곳까지 돌을 옮겨 성을 쌓은 땀과 노력에 그저 ‘와!’ 하는 외마디만 터져 나온다.
터키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과 저수조의 천정을 받치는 336개의 기둥은 모두 소아시아와 그리스 신전 여러 지역에서 운반해 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거대한 돌기둥들을 어떻게 바다를 건너 운반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배가 가라앉을 만큼의 무게들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일에 투입된 사람들은 여름의 뙤약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운반했을 것이다. 그들은 허리가 휘고, 온 몸에 상처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 덕분에 성이 쌓이고 담이 생기면서 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적의 위험을 막는 방어막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후,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 그들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눅 24:2)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무덤의 돌이 옮겨진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됐다. 우리의 삶에도 꼭 옮겨야 하는 바윗돌들이 있다. 내가 직접 옮기에는 무겁고 두려우며,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 같은 돌들 말이다. 사역의 짐, 부부관계, 관계의 어려움 등 그런데 그 돌들을 옮길 때, 내 삶이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2015년 끝자락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만의 바윗돌이 있다면 직접 옮겨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