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며,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는 삶인가? 아니면 무늬만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고, 마음속에는 소유에 대한 욕망을 하나둘씩 쌓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그의 저서에서 소유형 인간과 존재형 인간으로 나눠 설명한다. 소유형 인간은 삶의 가치와 목적을 소유하는 데 두고 사는 사람이다. 즉 욕심에 의해 이끌리는 사람을 소유형 인간이라 한다. 반면, 존재형 인간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인간답게 존재하는 것에 두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유를 향해 돌진한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신다. 너무 많이 보고 들은 말씀이지만 삶에서 지키기는 쉽지 않다. 가정과 자녀를 돌봐야 하는 존재형 부모가 직장에서 연일 야근하며 일을 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헌금을 떼어 놓아야 하지만, 매달 나가는 각종 세금과 학원비, 자동차 할부금, 집 대출금, 카드 청구서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갈등하게 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교와 직장에서 시기와 속임수를 쓰게 된다. 이만하면 충분한데도, 더 가지려고 더 올라서려고 애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익을 따르는 불의한 자가 아닌 의를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현실에서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의 덫에 걸려 믿음의 정신 줄을 놓으면 눈에 보이는 욕망과 보이지 않는 욕심 사이에서 사탄의 친구가 돼 버린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익을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삶의 우선순위 문제를 직시할 것을 말씀하신다.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알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먼저 하면 지엽적인 이익과 소유는 따라온다는 의미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면 의도 얻고 이익도 얻는다는 말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온갖 고생을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느보산에서 죽는다. 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도 불평하지 않고, 후계자 여호수아를 축복한다. 모세는 존재형의 삶을 산 인물이다. 바르실래 역시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공궤해 준 보답으로 예루살렘에 함께 가면 상급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지만 겸손히 거절한다. 바르실래는 다윗을 도운 공을 자신의 공으로 여기지 않고, 기존의 삶에 자족한다. 사르밧 과부는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섬겼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섬긴 그녀는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동역자가 되려면 가장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또 끊임없이 자기 부인과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b).
이에 <디사이플> 1월호에서는 ‘제자의 삶은 감사를 일상화하고 자족해야 승리한다!’라는 기획 주제를 마련하고, 예수님을 믿는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탐욕이 삶을 좌지우지할 때 자족하는 방법,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시간과 물질을 떼어 놓는 법,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제자 된 일체의 비결이 담긴 존재형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