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목회자의 일을 AI가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첫 번째 질문을 해 보자. 지방의 한 중형 교회 목회자는 매주 새벽마다 설교 준비보다 먼저 카카오톡 알림을 확인한다. 새신자, 장기 결석자, 소그룹 리더, 청년부 청년들까지 각자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늘 손과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는 위로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신앙 질문을 던지지만, 모든 이름과 사정을 기억하기에 목회자의 하루는 너무 짧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AI는 목사가 손이 닿지 않은 목회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AI가 강단에서 설교를 대신 선포하거나, 고난에 빠져 상심한 성도를 위해 대신 기도나 위로를 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목회의 ‘본질’이 아닌 ‘환경’과 ‘도구’의 영역에서는 이미 AI가 실질적인 목회의 동역자가 돼 가고 있다.
위의 글은 “AI와 목회의 접목,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기획 주제로 <디사이플> 1월호 기획스토리를 쓰려고 할 때, “ChatGPT에게 와닿는 예시를 서두에 적어 달라”고 말하자, ChatGPT가 대신 써 준 문장이다.
이처럼 AI는 일반적인 글쓰기는 물론, 설교문이나 기도문, 심지어 훈련 과제물인 독후감과 설교 요약뿐 아니라 고도의 깊은 말씀 묵상을 통해 도출돼야 하는 D형 큐티 과제물까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AI가 할 수 있고 가능한 것이라도, 허용 가능한 범위와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경계선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혼의 변화를 다루는 목회와 훈련 영역은 영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다.
AI가 목회자보다 설교문을 탁월하게 잘 써 준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해야 할 도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코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설교자가 이번 주 주일예배에서 전할 말씀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며 묵상을 통해 작성해 전하지 않고, AI 앞에서 설교할 내용을 간구한다면 곧 AI 시대의 바벨탑 사건으로 흑화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되기 위해 결단하고 훈련받는 훈련생들이 ‘고된 훈련’의 과정이 힘들다고 AI한테 D형 큐티를 대신 맡긴다면, 수료식 날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성과 투명함을 훈련받아야 하는 훈련생의 모습에도 위반된다.
이 점은 인도자도 마찬가지다. 인도자와 훈련생은 모두 1년간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영적 씨름을 하고, 서로 목자와 양과 같은 관계를 맺는데, 훈련생의 과제물을 ChatGPT에 넣고 평가나 피드백을 써 달라고 한다면, 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는 맺어질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설교와 제자훈련 과제물 작성뿐 아니라, 교회와 관련한 대부분의 사역이 성령 하나님 안에서 사랑과 위로, 영적 변화와 관계를 맺어 간다는 점에서, AI는 더 나은 변화를 위한 도구로 다스리고 점령해야 할 영역이지, 하나님을 대신할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방치하면 절대 안 될 것이다.
이에 <디사이플> 1월호에서는 “AI와 목회의 접목,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기획 주제를 다뤄 봤다. AI의 목회적 원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 AI 시대 설교 작성은 목회 윤리의 영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AI를 활용한 훈련 과제물 작성은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가, D형 큐티를 작성할 때는 AI의 편리함보다 영적 수고로 말씀과 만나야 한다 등 AI라는 신문물을 활용한 목회와 훈련 사역의 경계선과 주의할 사항에 대해 짚어 봤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