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지난 7월 말 논밭 사이로 여름 뜨거운 태양 빛을 받고 우뚝 서 있는 장원교회로 부여 에벤에셀 연합회 목회자와 사모들이 3박 4일간 모여들었다. 사랑의교회 에벤에셀 전도폭발훈련을 받기 위함이다. 복음의 날 것을 다시 듣고 암기하면서 스스로 첫사랑의 감격에 젖어 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품고 기도해 온 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결신하길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했다.
첫날 목회자와 사모님들의 표정은 농촌 교회 목회에서 오는 실패와 외로움, 낙심과 아픔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수료식 때의 표정은 달랐다. 서툴게 복음을 암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무녀리”라고 웃으며 놀리기도 하셨다. 무녀리는 이 지역에서 말이나 행동이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인데, 수료식 날 그 무녀리라 놀리던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파송의 노래”를 마치 전쟁에 나가기 전 군인들처럼 결기 있는 표정으로 힘차게 부르셨다.
3박 4일간 훈련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중간에 농사지으러 가신다며 참여율이 들쪽날쪽하기도 했고, 복음 전문 암송에 부지런하지도 못해 서로를 “무녀리”라 놀리던 분들이 막판에 힘차게 두 주먹을 쥐면서 “너는 가라 주의 이름으로! 거치른 광야 위에 꽃은 피어나고 세상은 네 안에서 주님의 영광 보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 이기신 주 늘 함께 너와 동행하시며 네게 새 힘 늘 주시리”라고 힘차게 찬양하실 때는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마치 딴사람들 같았다. 아니 그 모습이 본래 모습이었다. 선교지 같은 농촌에서 지친 그들을 에벤에셀 전폭훈련이 되살려 놓은 듯했다. 그것이 복음의 힘, 전도의 힘이었다. 전도라는 미련하고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 오히려 영적 생명력을 준 것이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시며, 전도할 때 성령과 함께 능력도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에벤에셀에 참석한 한 사랑의교회 성도는 “여기 에벤에셀은 정말 보물단지 같아요”라고 진심을 담아 고백하기도 했다.
교회의 여러 사역 중 힘들지 않은 사역이 없겠지만, 영적 심적 부담감은 에벤에셀 사역만큼은 못 할 것 같다. 그러나 사역하며 받는 은혜는 너무 크다. 에벤에셀 사역은 훈련생으로 참여하는 목사님과 사모님뿐 아니라, 훈련자인 평신도 전폭 교사까지 섬기면서 은혜를 받는다. 복음과 전도의 힘이 모두를 회복시키고 다시 예수님의 제자 정체성으로 무장시켜 세상으로 파송한다.
말 그대로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였다. “에벤에셀”은 히브리어로 ‘도움의 돌’이라는 의미로, ‘에벤’은 돌, 반석, ‘에셀’은 돕다는 뜻이다. 사무엘상 7장 12절에서는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고백한다. 원래 에벤에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언약궤를 빼앗겼던 실패의 장소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은 패배의 장소에서 승리를 주시고 기념비를 세우게 하셨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에벤에셀’이 있다. 농촌 교회 목회자에게도, 도시 교회 목회자에게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실패와 고난마저도 거룩한 승리의 기념비로 바꿔 주신다. 그 실패와 고난의 자리인 농촌에서 40~50대 젊은 목회자들이 “농촌 교회에도 소망이 있다”라며 에벤에셀 사역을 통해 힘과 도전을 받아 교회를 건축하고, 주일학교를 세우며, 오늘도 힘차게 마을회관에서 복음을 전한다.
이에 <디사이플> 9월호에서는 “농촌 교회를 살린다, 사랑의교회 에벤에셀 전도폭발훈련 사역”이라는 기획 주제로 만물 위에 충만케 하는 교회의 영광에 대한 본래 의미를 살펴보고, 지역의 복음 생태계를 다시 세우는 에벤에셀 사역의 헌신과, 사도행전적 에벤에셀 연합 사역의 의미과 현황, 에벤에셀 전폭훈련이 농촌 교회를 살리는 이유, 에벤에셀을 만난 후 변화를 경험한 농촌 교회 목회자 3인 인터뷰를 통해 제2의 선교지라 불리는 농촌 교회를 살리는 사랑의교회 에벤에셀 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은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