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2011년 01월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한 제자훈련

교회와제자훈련 한상규 목사 _ 흥해 베델교회

대구에서 부목사 생활을 3년 정도 하다가 처음으로 담임목회자로 부임한 곳이 포항 옆에 있는 흥해 베델교회였다.
개척한 지 12년 정도 된 교회에서 전임목사는 재정사고로 사임한 상태였고, 교회는 목회자로 인하여 심각한 내홍을 앓고 있었다. 2006년 2월에 부임한 나는 목적이 이끄는 40일 새벽기도회로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고, 그해 6월경 CAL세미나 70기에 참여했다.
상처와 갈등이 많았던 교인들을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제자훈련이 적합하다는 주위 동료 목사들의 조언이 있었고,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도 제자훈련을 어느 정도 접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참여한 CAL세미나의 첫 시간,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을 듣고서 내 목회는 뿌리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목회성공이 아니라 목회철학과 교회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터 다시 정립해야만 했다.
CAL세미나 기간 동안 받은 열정과 40대 목사의 젊은 패기로, 충분한 준비 없이 2006년 9월부터 제자훈련 남자반 6명, 여자반 8명을 시작했다. 물론 장로, 권사, 안수집사로 구성된 중직들부터 시작했는데, 평소 해보지 않았던 D형 큐티로 인하여 훈련생들이 부담을 느끼고, 급기야는 큐티 나눔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래도 나는 제자훈련을 잘하는 교회로 만들어야겠다는 열정으로, 훈련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고, 예습과 암송과 큐티 그리고 생활숙제에 독후감까지 과제를 강제로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권 중간 정도를 진행할 무렵에 드디어 남자반에서 2명의 훈련생이 포기를 선언했다.
그래도 여자반은 어느 정도 잘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큐티 나눔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내가 설교에 인용하여 상처를 받았다며 나오지 않는 집사님이 생겼다.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고, 내 힘으로는 도무지 남자반과 여자반 2개를 병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남자반을 중도에 해체했다. 그리고 다시금 제자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설교나 사석에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사과와 함께 1기 여자 제자반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렇게 해서 2007년 11월에 어렵게 제자훈련 1기생을 수료했다. 첫 제자훈련의 실패 이후, 나는 제자훈련 체험학교에 등록하여 다시금 제자훈련에서 나의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를 실제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 이후 해체했던 남자 제자반을 일대일 심방하면서 솔직하게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다시금 제자훈련에 참여할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2008년 남자 제자반과 여자 제자반 2기를 개강할 수 있었다.
어설프게 시작한 제자훈련이었지만 지금은 4기 제자반을 끝내고, 실패했던 남자 제자반을 중심으로 사역훈련 1기도 수료했다. 내년의 5기생을 기대하면서 깨닫는 것은 제자훈련의 성패는 결국 준비된 목회자 자신에게 달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4년의 제자훈련을 통해 갈등과 상처로 골이 깊었던 교회에 서서히 제자훈련의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나와 함께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훈련생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인 나 자신이 얼마나 변하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최소한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달을 만큼은 변화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제자훈련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부족한 나 자신과 교인들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