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송정수 목사_ 행복한제자교회
대학원을 졸업하고 등록금에서 해방되었다는 아내의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하나님은 개척을 위해 수원이라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를 얻을 수 있는 물질도 없었고, 개척 멤버도 없었으며, 목회자로서의 인격이나 자질도 너무나 부족한 상태였다.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고 훌륭한 목회자들이 많은데, 하나님은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왜 개척이라는 사명을 주시는지 ‘하나님,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천만 원 보증금에 월세, 관리비 등을 생각해 보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우리 자신이 마치 광야에 던져진 마른 막대기처럼 느껴졌다. 주님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만 있을 뿐이었다. 시장통의 복잡한 주상복합 건물에, 십자가도 세울 수 없고, 간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당구장 자리로 주님께서 인도하셨다. 어린 아들과 조카 한 명을 데리고 2001년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얼마 후 조카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학생들이 몇 명 나오게 되었는데 모두 오갈 데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와 한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전도한 몇 명의 초신자와 오갈 데 없는 청년들이 모인 교회이다 보니, 헌금은 거의 없었고 생활비는 만만치 않았다. 개척 교회는 영적인 전쟁보다 월세와의 전쟁이 더 치열하다는데, 정말 누가 보아도 그러한 상황이었다.
정말 감사한 것은 한 번도 월세나 관리비를 밀리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것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교회가 부흥할까’였다. 함께 있던 청년들이 개인사정으로 한 명 한 명 떠나갔고, 조카마저도 1년이 지나자 ‘더 이상은 부담스럽다’며 결국 떠나고 말았다.
“하나님 보세요. 왜 저에게 개척하라고 하셨나요? 아니잖아요”라며 낙심하고 있을 때, 스승 목사님의 권유로 CAL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모인 그 가운데서 나 자신이 가장 초라해 보였다.
그때 옥한흠 목사님의 ‘한 영혼의 가치’에 대한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영혼이라도 주님 앞에 올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목회임을 깨달은 나는 새로운 비전을 안고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에는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몇 명의 초신자들만이 출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세상에서 떠밀려온, 망하고 깨진 몇 명의 사람들을 모아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하셨다. 변화되지 않으면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제자훈련은 놀랍게도 3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1기생들이 차츰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2기생들이 훈련받게 되었고, 3기에서 5기에 이르는 모든 기수들이 거의 3년이 지나서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다. 훈련이 너무 길었던 까닭에 중도 포기하는 훈련생들도 있었고, 한편에서는 두려워서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사역자로서 일선에서 본이 되어주었고, 교회 건축에도 앞장서 주었다.
행복한제자교회는 아직도 너무나 작은 교회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처럼 앞으로 준비되고 훈련될 성도들을 생각하면 기대감으로 가슴이 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달아 가는 것, 그것이 제자훈련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가치 있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을 가치 있게 하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