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조현용 목사_ 목포 빛과소금교회
사도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고백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생각한다. 아무리 소명의 감격이 크고 순교를 각오했어도, 주님께서 그가 달려갈 길을 붙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성대 결절 수술로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다
내가 고(故) 옥한흠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7기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인데, 당시 나는 옥 목사님이 어떤 분이시며 제자훈련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친구 목사님이 같이 가보자고 해서 CAL세미나에 덩달아 참석했다. 하지만 옥 목사님의 ‘광인론’ 강의를 들으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제자훈련 사역을 위해 철저히 미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주관하는 각종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옥 목사님을 자주 뵙게 됐다.
당시 옥 목사님은 크게 편찮으셨다가 회복되신 후라 강의하실 때마다 “제자훈련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자신의 진액을 다 빼내는 사역이니 제자훈련 하는 목사들은 특별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면서 건강을 많이 강조하셨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갓 40대로 그동안 아파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감기를 앓은 적도 없고, 1주일 금식을 한 후 바로 식사하고 심방하고, 새벽기도도 빠진 적이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어도, 피곤하고 고단한 줄을 모르는 건강한 체질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은 “좋은 쇠처럼 건강하다”고 했고,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은 어떻게 새벽기도 한번을 쉬지 않는지 내게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그럴 때에 제자훈련 사역에 불이 붙었던 나는,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못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무작정 시작했다. 내가 제자훈련에 얼마나 미쳐있었던지 교인들도 일단은 너도나도 참석했다. 한 주에 모든 정규 예배와 새벽예배를 다 인도하고, 각종 심방을 하면서 무려 8개의 제자반을 인도했으니 그야말로 미쳐도 미친 줄을 몰랐다. 그렇게 사역하다 보니 무리한 결과가 나타났다. 지나친 성대 사용으로 인한 성대 결절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져 결국 성대 결절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말 못하는 벙어리처럼 지냈다.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성대 결절 수술을 받고 쉬니, 이전보다 맑고 고운 목소리가 나왔다. 의사는 성대 수술 후 성대 사용을 주의하라고 했지만, 사역을 쉴 수는 없었다. 다시 미쳐서 제자훈련을 계속하자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결절이 생겼다. 의사는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목사에게는 성대가 생명이니 앞으로는 절대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그 의사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주님께 기도드렸다. “주님! 저의 생명은 성대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제가 사는 날 동안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제자훈련 사역을 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수술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수술을 뒤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날부터 말을 할 수 있도록 치료해 주셨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25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게 해주셨다.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켜준 당회원과 성도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대 때문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지만 도리어 더 많은 은혜를 누리며 지내오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를 말기암으로 먼저 주님의 나라로 보내는 큰 아픔을 겪게 됐다.
실제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은 기간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특별히 통증이 심하거나 큰 수술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마지막까지 평온한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주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다. 아내를 병간호하면서, 수요일과 주일이면 서울에서 목포까지 오고 가며 교회를 섬겼던 일이 무리가 됐는지, 급성 치질이 생겼다. 임시 응급 수술을 받고 불편한 몸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내를 간호하며 아내를 떠나보내게 됐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여러 충격 중에서도 배우자를 잃은 충격이 가장 크다는데 나 역시 그랬다. 구원의 확신과 천국의 소망, 신실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신하면서도, 아내의 빈자리는 주행 중에 갑자기 만난 싱크홀처럼 나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후에 주위를 살피니,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아내만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와 함께 살아오고 사역해 왔던 모든 것이 아내와 함께 멀리 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함께했던 당회원 부부나 권사님들, 여전도회와의 만남 자체가 피차에 부담으로 느껴졌고, 교회의 모든 사역이 타격을 받았다.
주일예배를 비롯한 각종 예배는 정상적으로 진행됐고, 교회 각 기관의 사역은 평소처럼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아픈 마음을 애써 감추려고 모두가 말없이 지내고 있었다. 담임목사를 바라보는 교인들의 눈빛 속에는 동역자로서 연민의 마음들이 가득했고, 말없이 기도하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교우들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담임목사인 부족한 이 종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신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 당회원을 비롯한 모든 성도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천성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돌이켜 보면 성도들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의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자훈련을 통해 다져진 저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풍파를 겪으면서 제자훈련은 부목사들이 계속 진행했지만, 사역훈련은 담임목사인 내가 가정의 여러 일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하루빨리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제자훈련을 해야 내가 영적으로 힘을 얻고 삶의 소망을 회복할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것은 곧 교회가 다시 힘을 얻고 새롭게 되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세 딸과 교회,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누리기 시작하다
아내가 주님 나라로 먼저 떠나간 후 우리 집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첫해에는 서울에 사는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외손녀, 유치원생이던 외손자와 함께 목포로 내려왔고, 사위는 혼자 직장 생활을 하며 주말이면 목포로 내려오는 수고를 했다. 그렇게 1년을 함께 살면서 아버지를 섬기다가 돌아갔고, 2년 차에는 안산제일교회 부목사로 섬기던 둘째 딸이 우리 교회 부목사로 부임해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내려와 교회와 가정에서 섬겨줬다. 둘째 사위 역시 격주로 목포에 내려오는 수고를 마다치 않고 나를 위로해 줬는데, 어린 손녀 손자들 때문에 외롭고 슬픈 중에서 큰 위로를 얻고 목회를 감당할 수 있었다.
특히 셋째 딸은 미혼으로 서울에서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가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자, 곧바로 직장을 사직하고 목포로 와 엄마를 간호했다. 엄마가 떠나간 후에는 큰 언니와 조카들과 함께 지내면서 조카들을 돌봤고, 이듬해에는 부목사인 둘째 언니네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함께 지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도 항상 내 마음속에는 어서 빨리 제자훈련에 정진해야 한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듬해에는 다시 사역훈련을 시작하면서 교회의 각종 훈련들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일본 북해도에서 열렸던 CAL-NET 팀장 수련회에 참석해 동역자들과 교제하며 많은 위로와 새 힘을 얻었다. 이처럼 나는 차츰 안정을 누리면서 사역에 정진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을 겪게 되었으니 형제들과 자녀들이 재혼을 권한 것이었다.
재혼의 권유 중에 찾아온 모세혈관염과 갑상선암
나는 8남매의 첫째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형제는 목사 셋, 사모 셋으로 6남매가 목회를 하고 있고, 나의 첫째, 둘째 딸은 장신대 대학원을 나왔기 때문에 목회자의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홀로된 나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면서,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한마음으로 재혼을 강권했다. 이런 움직임 때문에 나는 극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발목 위에 있는 모세혈관이 터지더니 차츰 무릎까지 올라오는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원인은 심한 스트레스와 면역력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모세혈관염이라,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퇴원 후에도 미열과 피곤한 증상이 있어 정밀검사를 받다가 왼쪽 갑상선에서 조그만 종양을 발견했다.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는데, 마음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모세혈관염으로 입원하면서 제자훈련을 쉬게 됐는데, 설상가상으로 갑상선암 수술까지 받게 되니 마음이 몹시 힘들고 착잡해 은혜의 주님만을 의지했다. 그 사이, 목사인 동생들과 장로님들, 딸들은 한마음으로 목포 시내에 있는 같은 교단의 교회에서 24년을 처녀로 사역하고 있는 심방 전도사님을 만나보라고 권면하며 설득해 나와 그분의 재혼을 기정사실로 몰아가고 있었다.
재혼한다는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중에, 나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갑상선암 수술받을 날을 예약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에 처했다. 세 딸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그러면 재혼 상대인 전도사님을 만나 사실을 말씀드리고 그분의 최종 결심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분을 만나 지금까지의 과정과 현재의 형편, 앞으로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을 날을 예약한 것을 다 진솔하게 알려 드렸다. 그런데도 그분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대답했다.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를 물어보니 자신의 생각과 체험을 말했다.
그분은 신학교를 졸업 후 심방 전도사로 사역하다 지금 시무 중인 교회에 부임했는데, 어느 날 담임목사님 사택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사모님이 소천하고 함께 있던 따님은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위험한 순간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모님을 잃은 목사님이 얼마나 힘들어하시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봤고, 그런 어려운 고비를 지나 몇 년 후에 목사님이 재혼하시고 가정과 목회가 안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사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절히 느꼈다고 한다.
평소 빛과소금교회와 나에 대해서 좋은 말을 많이 들었고, 여러 형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권면해서 기도했는데 주님께서 마음에 확신을 주셨다는 것이다. 목사님을 잘 섬기며 주님의 교회를 끝까지 잘 섬기라는 뜻으로 알고, 결혼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할 것은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치료를 마치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친정식구들이나 지금까지 섬겨 온 교회 식구들이 걱정하고, 불필요한 말들이 번지는 것에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분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놓였지만, 내가 또 한 가지 고심했던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막내딸의 문제였다. 아내가 어느 날 밤 병상에 누워 이런 말을 했다. 첫째와 둘째는 좋은 신랑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둘씩 낳아 온전한 가정을 이뤘으니 자기가 없더라도 문제없이 잘 살겠지만, 막내는 미혼이라서 아직도 철부지 같은 구석이 있는데 자기가 가고 없으면 누가 막내를 잘 이해하고 돌볼지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막내딸을 사랑하고 배려해주는 좋은 신랑을 만나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재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막내딸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극동방송의 PD로 있는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남자친구가 생긴 막내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져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막내에게 “네가 결혼하기 전까지 아빠는 너를 생각해서 재혼하지 않기로 마음에 작정했다”고 말했는데, 막내는 자기가 결혼하게 되면 누가 예식장 엄마 자리에 앉겠느냐면서, 하루빨리 재혼하고 수술받아 자기의 결혼주례를 아빠가 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갑상선암 수술 한 달 후, 다시 성대를 수술하다
그래서 2013년 7월 24일, 목 왼쪽에 있는 갑상선을 절제하고 오른쪽 갑상선은 살리는 수술을 받고 이틀 만에 퇴원했다. 2주일이 지나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수술해주신 주치의를 찾아가 상담했더니, 성대 신경이 놀라서 그럴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한 달을 요양하며 기다렸으나, 여전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말을 못하니 설교를 할 수 없고 제자훈련도 할 수 없어 오직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어느 날, 평소 친교가 있던 모 대학교 음대 학장으로, 성악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셨다. 그분은 자신이 잘 아는 성대 전문 명의이신 박사님을 찾아가 정밀진단을 받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자고 권면했다.
그분은 일부러 나를 위해 시간을 내 병원까지 앞장섰고, 만나고자 했던 명의는 점심시간에 일부러 시간을 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도움을 줬다. 정밀진단 결과 갑상선 수술을 하면서 성대 신경을 살짝 건드려서 신경이 손상됐는데, 자꾸 목소리를 내니 나머지 한쪽 성대에 무리가 갔다고 했다. 이제는 성대복원 미세 수술을 해야 한다며, 바로 며칠 뒤에 수술할 수 있도록 예약을 잡아줬다. 또한, 기본 검사를 당일에 다 마치도록 배려를 해 주셨는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 의사는 내가 하루빨리 복음을 전해야 하기에 서두르셨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갑상선 수술 후, 한 달 만에 다시 입원해 성대복원 미세 수술을 받게 됐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전신마취를 두 번이나 하게 돼 개인적으로 무리가 됐지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수술이 잘 되고 건강 회복도 잘 됐다. 수술 후 2주 만에 조금씩 설교를 할 수 있었고, 한 달이 지난 후에는 무리하지 않는 가운데 정상적인 설교를 하며 거의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또 목사가 아프니 모든 사역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역은 고사하고 교회를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특별히 제자훈련 하는 목사는 더욱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옥 목사님의 말씀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돼 2014년 새해를 맞이해 건강 때문에 그동안 중단해 왔던 제자훈련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순장반, 사역반, 초급제자반 등 4개의 훈련반을 맡아 의욕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훈련생들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음을 나누며, 은혜 가운데서 함께 울고 웃었다. 성령께서 새롭게 해 주시는 제자훈련의 맛을 보며, 여름 방학을 맞이하게 돼 정말 오랜만에 사역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또 다른 발병, 병상에서 드린 절박하고 통회하는 기도
그러던 어느 날, 주일예배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급체인가 해서 소화제를 먹고 참다가 시간이 갈수록 너무 힘들어 진통제를 먹어가며 밤새 시달리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바로 그 주일이 맥추감사절이고 성례식을 거행하기로 한 주일이었기 때문에 응급실을 가지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참고 버텼는데, 다행히도 아침에 상태가 호전돼 예정대로 주일예배를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새벽에 다시 복통이 일어나 검사를 해보니 담낭에 염증이 심해 터지기 직전이었다. 응급조치로 담낭에 구멍을 뚫어 담즙을 체외로 배출시키고, 정밀진단을 했다. 하지만 담도가 많이 부어 있어서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어쩌면 담도관암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일단은 염증이 치료되면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면서 조직 검사를 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정확한 조직 검사를 하고 담낭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는데, 증세가 미심쩍다며 몇 가지 검사를 하면서 여러 날이 지난 다음에 수술을 받게 됐다. 주치의는 복강경 시술을 하면서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개복해 담도관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주치의의 말을 듣고 나니, 절박한 마음이 밀려왔다. 만약에 내가 수술받다 그대로 숨이 멎거나, 목숨은 부지해도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가족들과 교우들에게 걱정만 끼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정리하지 못한 일들과 회개할 것들을 생각하며, 병상에서 주님께 눈물 흘리며 통회하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한 번만 더 주의 인자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제가 주님을 만나 뵈기 위해 준비할 시간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 보시기에 잘못한 것들 때문에 회개할 것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더 잘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도 많은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됐다.
왜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품고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가? 주님께나 사람에게나 사역하는 일에나 더 잘하지 못한 일들이 그렇게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로, 담낭 절제 수술을 하고 며칠 뒤에 나온 조직 검사의 결과는 단순 만성담낭염이었다. 그동안 가슴 졸이던 결과가 좋게 나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몸도 빨리 회복돼 입원 한 달 만에 퇴원하게 됐다.
고난보다 더 큰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누리다
발병과 수술 과정을 겪으며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 넘쳤다. 시편 기자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한 고백이 내 고백이 됐다. 그동안 우리 교우들이 부족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기도했는지, 내가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됐으니 감사할 뿐이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외형적으로는 참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내면적으로는 주님의 한량없는 위로와 은혜를 받고 누렸다. 내 속사람과 삶이 많이 정화되고 성숙됐음을 감히 고백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일이 주님의 일이며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는 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말씀을 생각한다. 비록 건강 때문에 제자훈련을 중단하기도 했고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더 나은 인도자로 세워지게 돼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이제 나는 고백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말씀처럼,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가 되고 싶다. 제자의 삶을 사는 일과, 다른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소원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할 뿐이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최선을 다해 제자훈련을 하다 주님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