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제자훈련

2018년 02월

나의 목회고민 - 교회 전통을 끌어안고 가는 목회

교회와제자훈련 이상철 목사_ 양주목민교회

‘당신의 목회 비전은 무엇입니까?’ 목회자 청빙 심사를 하는 교회가 반드시 묻는 주요 질문이다. 아마도 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정보를 얻고자 할 것이다.
첫째, 이 목회자가 목회에 어떤 꿈을 갖고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어떤 방안을 가졌는가? 둘째, 그 꿈과 방향은 우리 교회의 전통과 부합하는가? 셋째, 이것의 기초가 되는 성경관, 목회관은 어떠하며, 지금까지의 목회 성과는 어떠했는가? 이다.
그런데 교회가 요구하는 이 세 가지 기준이 충족돼 청빙된 목사라 할지라도, 청빙 후 목회 사역을 시작하다 보면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보통 교회의 전통이다. 급진적, 혁명적 목회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교회 제도와 체제를 대폭 바꾸려 하고, 온건한 목회자는 일단 기존의 체제를 수용하면서 시간을 두고 하나씩 수정·개편하려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설득-이해’가 대세인 시대는 목회자가 자신의 의지와 목적, 방법론을 당회나 제직회를 통해 교회에 논거(論據)하고 관철시키려 한다.


교회 전통과 목회자 간의 갈등
교회 전통이란 무엇인가? 오랜 세월을 통해 고착화된, 한 교회가 가진 독특한 문화, 방식, 체계, 색깔, 습성 내지 습관이다. 그것은 그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친 전임 목회자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장로나 혹은 어떤 중직자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고착화된 전통이라고 하는 렌즈로 후임 목회자의 목회 방식이나 목회 방향을 통제하려다 보니 내부적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의욕 넘치던 목회자는 얼마 가지 않아 목회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특히 십인십색이라고 한 가지 일을 두고도 저마다 생각과 평가가 달라서 이것이 목회자를 향하게 되면, 목회자는 소극적으로 되거나 안일한 목회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전통을 과감히 공격하셨다(마 15:1~13).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외식과 범죄에 정면 대응하심으로, 결국 그 사회에서 거부되고 축출됐으며 십자가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대적한 무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이었다.
내 주관적 견해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목회자가 교회 행정에 능하다고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다. 성격이 원만하다고 무탈한 것도 아니다. 최근 ‘섬김의 리더십’이 대세였으나 이 또한 목회자에 대한 신뢰나 권위성을 보장해 주는 온전한 요건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목회자의 권위는 결국 말씀에서 나온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뜻은 분명하다. 단순히 진리의 말씀을 목소리 높여 선포한다고 말씀의 권위가 서는 것이 아니다.
또 말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해석, 적용, 공감적 능력만으로 말씀의 권위를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씀의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자의 영적 권세, 소위 아우라(Aura)가 함께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목회자 자신의 깊은 영적 소통으로부터 생겨난다. 영적인 역사(치유와 회복)와 수적, 재정적 부흥이 목회자의 영적 권위를 대변한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목회자들은 말씀의 권세와 영적 권세를 동시에 갈망한다. 이것만이 교회 전통을 개혁할 수 있는 일방통행인 것처럼 함의(含意)되고 있다.


전통 교회에서 목회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우리는 지금 어쩌면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목적지는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는 길이 없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것은 다만 방황일 따름”인 시대를 살고 있다. 윈스턴 처칠 경의 말처럼 “우리의 문제는 이미 우리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어느 목회 스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신 있게 목회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단 3년 안에 그만둘 각오를 하면 된다. 길게 가기 원한다면 소신을 잠시 묵혀 두고 기다리라.” 그런 점에서 한 교회에 부임하는 목회자가 반드시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교회 전통은 그 교회의 역사와 문화 속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혹시 잘못된 전통일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먼저 그 교회의 역사(문화)와 전통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둘째, 신뢰를 얻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상에 거하는 어떤 공동체도 처음 세워진 지도자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일수록 단명(短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와 사회의 생리다. 우리는 지금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국민에 의해 파면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신뢰는 모든 것의 생명이다. 신뢰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지만, 한번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셋째, 신뢰를 얻기까지의 긴 시간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시험을 받는 기간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제각각 지도자를 눈여겨보듯, 하나님도 영적 지도자를 눈여겨보신다. 창세기 22장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아무리 믿음이 투철한 사람도 반드시 하나님의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분(슥 12:1)이시다. 하나님께서 신뢰하시는 지도자는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받는다. 중요한 것은 그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을 앞세워야 한다는 진리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욕을 앞세우다가 자충수(自充手)를 두는 예가 허다하다. 나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하는데 누구를 변화시키겠는가? 결국 변화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또 모든 일의 귀속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도록 늘 그분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할 뿐이다.
잘못된 교회 전통, 낙후성 문화와 전통도 오롯이 그 교회의 것이다. 청빙된 목회자가 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신뢰는 더 빨리 생겨나게 된다. 성도들의 자리를 인정해 주고, 맘에 들지 않는 사역이 있을지라도 빼앗지 말며, 원치 않아도 성도들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여 줄 필요가 있다. 의욕 넘치는 목회자가 일을 잘 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원리를 무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과 맥코믹신학교 목회학박사 공동학위를 취득한 후 태백영락교회에서 9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이후 개척 목회 과정 중 100기 CAL세미나를 수료한 이 목사는 현재 양주목민교회에서 제자훈련을 꿈꾸며 목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