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컨설팅 이주호 목사 _ 소양제일교회
2000년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한 해였다. 그 해 2월, 나는 충북 청원군 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바나바훈련원이라는 곳에 등록했다. 일종의 목회자 재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목회를 하는 형의 권유로 마지못해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의 1년 동안 나에게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목회자로서, 한 신앙인으로서 너무도 부실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맨 손으로 전장에 뛰어든 병사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목회의 장에 뛰어들어서 그야말로 멋도 모른 채 목회를 한다고 요란하게 뛰어다니기만 했던 지난날들을 볼 수 있었다.
돈키호테가 되어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다. 자괴감이었는지 참 많이 울었다. 그리고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영성”이란 말을 이해하게 되었고, 목회자의 개인 영성을 위해서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 새벽기도 후 1시간 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오전엔 서재를 지키고, 저녁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삶을 다시 시작한 그 해 3월 첫 주에 제자훈련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은혜의 물이 올라서 그랬을까? 즉시 CAL세미나를 찾았지만 이미 한 발 늦어 등록이 마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이듬해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청강을 각오했는데, 강원지역장에게 3명의 후보생 추천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막강한 힘을 빌려 정문으로 들어가 44기 CAL세미나를 받을 수 있었다. 2000년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나바훈련원을 통해서 부실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목회자 개인의 영성을 위한 시간 투자가 시작되었다는 것, CAL세미나를 통하여 제자훈련 목회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님의 열정과 집중력이 내게는 엄청난 충격과 도전이 되었다.
순간의 변화는 비록 미미할지라도
2001년부터 본격적인 제자훈련을 시작했는데, 제1기 제자훈련에 등록한 훈련생이 무려 35명이나 되었다. 당시 출석 장년교인이 100여 명 정도 되었는데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들이 대거 등록을 한 것이다.
그만큼 교인들이 목이 말라 있었던 것이다. CAL세미나에서 두 개반을 권유했지만 다섯 개 반으로 시작을 해야만 했다. 제자훈련생 모집에서 좀 더 엄격한 규제를 두었어야 했는데 예상을 못한 것이다. 화요일 오전반, 화요일 저녁반, 목요일 오전반, 목요일 저녁반 그리고 주일 오후에는 청년제자반이 자리를 잡았다. 시간의 개혁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자훈련반을 편성해 놓고 일단 목표를 정했다. ‘큐티일천번제’와 ‘제자훈련’이었다.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일단 큐티일천번제를 위해서 그렇게 좋아하던 테니스를 접어야만 했다. 오전 서재 지키기는 제자훈련을 할 경우에는 오후로 돌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있는 각종 목회자 모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호스피스 ‘기쁨의 집’ 예배가 있었고, 목요일 오전에는 제자훈련이 있었고, 오후에는 서재 지키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일은 수요일 저녁 성경강해설교에 집중했고, 토요일은 주일 낮 설교준비를 위해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은 야심차게 되었는데, 그 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집중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나뿐 아니라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한 훈련생들도 늘어지는 모습이 확연했다. 성경암송도, 특별과제도, 제자반 모임에서의 긴장감도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했다. 그들에게서 기대했던 그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지사지만 그땐 몰랐다. 이전에 열정이 있었던 사람들만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정작 변화를 기대한 이들의 변화는 기대 이하였다.
결국 8명이 낙오를 하고 27명이 수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엄청난 실패감에 시달리면서도 제자훈련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 한 해 동안 제자훈련과 병행되어진 말씀묵상과 서재 지키기와 독서를 통해 내 자신에게 생긴 아주 작은 변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자훈련이 끝난 뒤 그들이 말씀묵상과 골방기도를 빠뜨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잃지 않았다.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매년 제자훈련은 계속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실패감에서 자유로워진 적은 없다. 늘 아쉽고, 늘 패배감이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을 놓을 수 없는 것은 그 순간의 변화는 비록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그 이후, 그들이 홀로 서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년 전 <디사이플>에서 글을 부탁해 와, 그동안의 제자훈련 수료생 총 명단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깜작 놀란 것은 130여 명의 수료생들이 거의 다 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사역과 봉사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 교회는 현재 제9기 제자훈련을 앞두고 있다. 올해도 내가 중점을 두는 것은 모든 훈련생들이 제자훈련에 집중하고, 말씀묵상과 골방기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나 스스로가 훈련생보다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묵상하고, 좀 더 독서하고, 좀 더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다.
제자훈련 중의 시간관리
제자훈련 시 나의 대체적 일과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월요일은 새벽기도 후 휴식을 취하고, 오전엔 주로 11시에 시작되는 ‘기쁨의 집’ 예배 준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기쁨의 집’을 다녀온 후 오후 시간은 주로 주간에 진행될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준비를 한다. 그리고 저녁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화요일엔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1시간 정도 말씀묵상과 제자훈련 준비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출근을 한다. 10시 제자훈련을 시작해서 1시경 끝나면 훈련생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시간은 서재 지키기로 들어간다.
때에 따라서 새가족 심방을 직접 할 때도 있고, 특별심방을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저녁식사 전 공지천 뚝방에 있는 왕복 4킬로미터의 조깅코스에서 30분 정도 조깅을 한다. 그리고 식사 후 제자훈련에 들어간다. 제자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10시 반쯤 된다. 수요일은 될 수 있는 한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오전엔 독서를 하고, 오후엔 저녁 설교에 집중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목요일 오전에는 다시 제자훈련이 있다. 오후에는 교회에서 일을 보고, 오후 4시부터는 목회자 축구를 두 시간 가량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자유 시간을 갖는다. 금요일엔 주로 심방을 하는 편이다. 심야기도회를 인도할 차례가 되면 오후에는 심야기도 준비를 한다. 그리고 토요일에도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집 서재에서 주일 준비에 온 시간을 보낸다. 제자훈련 10년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나의 생활주기이다.
혹시 제자훈련을 생각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첫 번째로, 경험상 제자훈련을 할 때 목회자가 우선하여 시간관리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생들의 눈에 목회자가 기도와 말씀에 젖어 있지 못하면 그들의 변화는 힘들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라면 에너지를 분산시켜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올해 중요한 기도제목 중 하나는 “할 수 있거든 잔을 옮기소서”이다. 내년이면 지방회(장로교의 노회에 해당) 임원(부서기)으로 봉사를 해야 하는데, 피하기도 어렵고, 하자니 회장에 이르는 4년의 임원 임기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의 출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교회적으로 향후 몇 년간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때라 답답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라면 받겠지만 “할 수 있거든 잔을 옮기소서”가 기도제목이다. 무엇보다 올 3~4월에는 호스피스 병원 건축을 해야 하기에 더욱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맡겨진 사역에 충실하려 한다.
세 번째로는, 목회자는 경건에 못지않게 체력을 관리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제자훈련 2년을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고갈이 되어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시간을 뺏기지 않으면서 내게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정착된 것이 일주일에 두 번 4킬로미터의 조깅과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동안 축구를 하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하고 있다. 사실 올해는 교회 창립 14주년과 함께 나에게 있어 두 번째 맞이하는 안식년이다. 특별한 안식보다는 공부를 좀 더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정도로, 적당한 운동은 나에게 결코 무시 못할 자심감과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시간관리는 크리스천의 영원한 과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제음악 ‘Sunrise Sunset’은 나라 없는 유대 민족의 비운을 처절히 노래하고 있고,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맞이하는 비결이 담겨져 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그저 시간 속으로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인간이 장막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나올 것 같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다. 역사, 그 너머에 있는 신의 섭리를 보지 못한다면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놀라운 지혜의 열매였다. 동시에 그들은 철저하게 그들 앞으로 새로운 시간을 당겨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간으로 그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열어가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의 해는 지고 뜨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들의 시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간은 힘든 세상을 극복해가는 그들만의 무기였다.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는 모든 목회자와 교인들의 영원과제이다. 하물며 제자훈련을 계획하는 목회자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보여준 유대인들처럼 시간을 가장 소중한 기회로 삼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이주호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동 대학원(M.A., Th.M.)을 졸업하고, 현재는 박사학위 과정 중에 있다. 봄내호스피스 대표로 섬기고 있으며, 소양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