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2008년 11월

섬기는 자가 큰 사랑을 품은 리더다

리더십 최승국 목사 _ 군산 성산교회

리더십에 관한 책들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주로 커다란 성취와 성공을 위해 필요한 리더십들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여러 가지 이론적인 리더십을 나열하는 것보다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느낀 리더십을 말하고 싶다. 리더로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사랑의 리더십’이 아닌가 싶다. 내가 경험한 사랑의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28년 전인 1980년 가을 총신대학 총학생회 부회장이 되었다. 총신대학에 과가 더 증설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좁은 소견으로는 혹시 신학이 좌경화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이것을 막을 길은 학생들이 성경공부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총신대학 시절에 배운 리더십
그때는 제자훈련이라는 표현보다는 성경공부라는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학장님을 찾아가서 총신의 신학이 계속해서 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전부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물론 바로 성경공부가 실시되지는 않았지만, 그 후 1학년에 입학한 모든 학생들은 조별로 나누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학장님에게 건의하고 기도하는데 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경공부를 건의하려면 나부터 해보자.’ 그래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제자훈련이었다.
전체 총 리더는 총신대학 학생이지만, 나를 가르치는 리더를 포함해서 중간 리더들은 총신대학 학생뿐 아니라 일반 대학생도 있었다. 나는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학생에게 성경공부를 배웠다. 그 리더는 성경공부를 인도하러 올 때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그 리더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에는 ‘리더란 베푸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 후 교육전도사가 되어서 나는 점심을 싸가지고 교회에 가서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면서 성경공부를 인도했고, 월요일에는 우리 집으로 불러 학생들에게 밥을 먹이면서 성경공부를 함께했다. 그리고 이 일은 그 후 전임전도사 시절, 강도사 및 부목사 시절, 담임목사 시절에 베푸는 목회를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8년 동안 집에 청년들을 매주일 20명씩 불러서 밥을 먹이면서 제자훈련을 했다. 이 시절에 배운 목회자에 대한 생각은 목회는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한다는 것이다. 성취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리더십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할 줄 아는 리더십
한번은 총신대학 축제가 있었다. 나와 같이 공부하는 급우들은 다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나는 학생회 부회장 일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교생실습을 다음으로 미루고 축제준비를 했다. 후배와 같이 밤을 새워서 축제할 장소에 전구를 가설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 선배들이 체육대회 입장식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입장하면서 가설해 놓은 전깃줄을 끊어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밤을 새워가면서 가설한 모든 전구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리자 정말 화가 났다. 그 차를 운전한 신학대학원 선배를 찾아갔다. 그리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기분 나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그 선배의 모습은 내 일생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선배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주 겸손한 자세로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다 고쳐 놓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고 도망 나왔다.
이때 리더는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박혔다. 리더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잘못했을 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의 리더십은 잘못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는 리더십이다. 그리고 겸손할 줄 아는 리더십이다. 이것이 내가 총신대학에 다니면서 배운 리더십이다.

 

신대원 시절에 배운 리더십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나는 한 번도 반장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총학생회 부회장은 해봤지만 반장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총신신대원 1학년 때 처음으로 반장을 하게 되었다. 반장을 하면서 신대원에 입학한 원우들의 학생기록부를 걷게 되었다.
거기에는 학력이나 가족관계, 그리고 신대원에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사회경력을 기록하는 난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기록한 카드를 걷으면서 그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대원에 같은 반으로 입학한 원우들의 경력이나 학력, 기타 모든 면들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들은 일반대학을 거쳐 신학대학원에 왔습니다. 이들이 생소한 신학을 접할 때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들을 잘 섬길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섬기기로 했다. 때로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그들의 부탁으로 책을 사러 서점에 가기도 하고, 다시 가서 바꿔다 주기도 했다. 전체 반원들의 책을 싸게 구입해 주기도 하는 등 기타 여러 가지로 그들을 섬겼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을 섬기면 그들이 나를 무시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때 중요한 리더십을 배웠다. 낮아지는 것, 섬기는 것은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이며, 사람들을 이끄는 방법임을 배웠다. 앞으로 어떤 교회에서든 사역을 한다면 먼저 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유년부 교육전도사 사역을 할 때나 대학부나 청년부에서 사역했을 때 그런 자세로 목회를 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사랑의 리더십은 자기를 낮추고, 죽이는 것
한번은 우리 반원들이 학교에서 모여 잠을 자면서 1박 2일의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 오면서 자기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 부서의 운영안을 가지고 오기로 했다. 그 운영안을 보면서 참 신기한 것이 있었다.
어떤 운영안은 부장 장로의 이름이 교육전도사 위에 있고, 어떤 운영안은 교육전도사의 이름이 부장 장로의 위에 있었다. 그리고 어떤 운영안은 똑같은 위치에 나란히 있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영안이 각각 다르냐고 물었다. 그때 반원들이 대답하기를 누가 높으냐의 싸움으로 장로가 높다고 생각하는 교회는 장로의 이름이 위에 있고, 교육전도사가 높다가 생각하는 교회는 교육전도사의 이름이 위에 있고, 누가 높은가 결론이 나지 않는 교회나 싸우기 싫은 교회는 똑같은 위치에 양쪽으로 기록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교회는 섬기는 곳인데 교회에서 누가 높은가로 이렇게 싸워야 하다니, 그것도 교회에서 본이 되어야 할 중직자와 교역자가 그런 싸움을 하다니,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그 후 담임목회를 하면서 주보에서 나의 이름을 맨 밑으로 내렸다. 교회는 서로 누가 높은가로 싸우는 곳이 아니라, 서로 낮아지기를 즐겨하는 곳임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사랑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은 사람이 높아지려고 하는가? 

 

목회하면서 배운 리더십
서울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에게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부교역자들은 CAL세미나를 갖다 와서 제자훈련반을 인도하는데, 나는 전도폭발을 담당한 관계로 CAL세미나를 참석하지 못해서 제자훈련반을 인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에서 담임목사님에게 제자훈련의 중요성을 말씀드려 담임목사님이 CAL세미나를 다녀오신 후 나도 갔다 왔다. 그 후에 제자훈련 하는 교회를 탐방하고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드디어 역사적인 제자훈련반을 인도하게 된 것이다.
3개반이 구성이 되었는데 내가 인도하는 반의 반원은 학력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가장 약했다. 제자훈련을 한다고 신청한 집사님이 나중에 못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 집사님은 본인이 학력이 낮아서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럼 다시 돈을 돌려 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교회는 대학생을 위한 선교단체처럼 일정한 학력을 갖춘 것이 아니라 학력이 천차만별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을 설득해서 제자훈련을 받게 했다. 그리고 모든 강의의 수준과 진행을 그 집사님에게 맞추었다.
또 한 집사님은 신앙적으로 약했다. 그래서 신앙적인 부분은 그 집사님의 수준에 맞추었다. 물론 CAL세미나에서 말한 식의 제자훈련은 아니지만 제자훈련을 했다. 그런데 하면서 서로가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다. 지식보다는 반원들의 수준에 맞는 생활적인 수준으로 제자훈련을 이끌었다. 이렇게 제자훈련을 진행하니 그분들의 삶이 변화되어 주위의 많은 상황들까지 변화된 너무나도 좋은 제자훈련 기간이었다.
이때 아주 중요한 경험을 했다. 리더는 특별한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때로는 본인이 원치 않는 사람들도 상대해야 하고, 그리고 그들과 같이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 후 지금 목회하는 성산교회에 왔다. 여기서도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여기는 농사를 짓는 분도 있고, 직장 생활하는 분들도 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제자훈련을 통해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청년시절이나 결혼 초에 본인과 함께 제자훈련을 해서 지금은 교회의 큰 힘이 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은 제자반을 인도할 때는 농번기 때 방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반은 사역훈련 마칠 때까지 8년의 기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유교 문화가 강한 나라다. 이 말은 교회에도 유교 문화가 강하다는 말이다. 유교 문화가 강한 한국 교회에 권위의 리더십이 아닌, 지배적인 리더십이 아닌 사랑의 리더십이 가능할까? 사랑의 리더십을 하면 교회가 부흥할까? 사랑의 리더십을 하면 교회에 변화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한가지다. 성경의 대답도 한가지다. 교회의 부흥과 상관없이, 교회의 변화와 상관없이 리더들이 추구해야 할 리더십은 사랑의 리더십인 것이다. 지금도 나는 제자훈련을 통해 그리고 우리 성도들과 내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사랑의 리더십을 배워가고 있다.

 

 


최승국 목사는 총신대와 총신대 신대원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총신대와 미국 리폼드신학교 공동 목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군산 성산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