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TIP 임종구 목사_ 푸른초장교회
제자훈련 Tip 코너의 마지막 원고는 ‘제자훈련과 우정’이라는 주제로 꼭 쓰고 싶었다. 나의 제자훈련은 교회 개척과 함께 시작됐는데, 벌써 20년이 됐다. 이제 제자훈련에 대해 알 것도 같은데, 아직 여전히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학생처럼 두려운 마음과 설렘, 그리고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한 확신으로 다가오는 것은 제자훈련은 ‘우정’이라는 것이다. ‘제자훈련과 우정’ 이것이 나의 마지막(?) Tip이다.
제자들과 우정을 나누신 예수님
예수님의 공생애는 곧 ‘제자훈련의 장’(場)이다. 12명이라는 소그룹 환경과 다양한 직업, 그리고 연령, 출신, 정치 성향,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은 제자 공동체에 독특한 문화와 연대감, 정서를 만들었다. 그래서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은 이들의 관계가 사제지간을 넘어 우정의 연대가 투영됐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예수님 역시 자신을 그들의 친구라고 천명하셨고(요 11:11; 15:13~14), 실제로 친구로 대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친구’나 ‘우정’이라는 단면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조금 억지 같을 수 있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훈련생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제자훈련에서 나타나는 우정의 측면은 한번쯤 성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제자훈련을 성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 있다. 교회 정책이라든가,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라는 학생 과장님의 방침 같은 훈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동체 분위기에서 때로 어떤 이는 의무감처럼 일 년 동안 제자훈련을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수료하지 않으면 소위 중직자가 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훈련생을 선발할 때 훈련에 지원한 동기까지 일일이 추적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훈련생들이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제자반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볼 때 어떤 이유로 제자훈련을 받든, 그 제자반은 원만한 제자반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자가 실패했다고 느끼는 제자반의 특징 중 하나는 연대감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정의 실종’이다.
훈련 교재는 다 마쳤고, 코스워크도 잘 마쳤는데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곧 우정을 쌓지 못했다는 증거다. 종종 자신이 가르치고 세운 장로에게 곤욕을 당하는 목회자가 있다. 많은 경우 훈련만 남고 연대는 없는 경우가 있다. 제자반을 수료한 이들은 인도자인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훈련만 있고 연대가 없는 제자반의 목회자는 해병대 조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인도자와 훈련생 간에 서로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 제자반에서의 우정은 어떤 것인가?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다.
제자훈련에서의 우정 쌓기
첫째, 훈련생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일단 반이 편성되면 인도자는 이름 외우기부터 해야 한다. 거의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로 외워야 한다. 그 훈련생의 모든 것을 스캔하듯이 외워야 한다. 그래야 제자훈련생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를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
그 훈련생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대화는 깊어지고 피상성도 벗어날 수 있다. 뒷조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관심이고, 관심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더 이해할 수 있고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훈련생의 입장에서 인도자가 자신에게 관심 없고,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훈련만 남고 연대는 없게 된다. 제자반은 대입 학원이 아니다. 제자반이 시작되면 인도자는 제자반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정규 수업 외에도 다양하게 만나고 특별한 시간들도 가져야 한다.
일 년 동안 단조롭게 교재 진도만 나가고 숙제만 체크한다면 그런 제자훈련은 진저리가 나지 않겠는가? 우정을 쌓기 위해 인도자는 권위 의식을 버리고, 먼저 열린 마음으로 훈련생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진정한 권위는 오직 말씀뿐이다. 또 조급한 마음도 버려야 한다. 느긋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모리아 산까지 갈 수는 없다. 인도자가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훈련생은 제자반에서, 그리고 인도자에게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둘째, 훈련생들과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걸어야 한다. 우정을 증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함께하되 질적인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열린 마음, 깊이 있는 대화와 유머, 웃음, 맛있는 식사와 여행이 필요하다. 나는 훈련생들과 함께 야구팀에서 함께 뛰고, 크고 작은 여행도 많이 갔다. 스키, 테니스, 낚시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산에 올랐다. 어떤 제자반과는 한 해에 한라산을 두 번이나 오르기도 했다.
훈련을 통해 분명 그들의 신앙도 자랐을 것이다. 비전도 발견했을 것이다. 생활과 습관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정도 쌓였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수료생들은 훈련이 아닌 추억을 말한다.
인도자는 마음을 낮춰야 한다. 몸을 높이면 권위가 쌓이고, 몸을 낮추면 우정이 쌓인다. 함께 털어놓고, 함께 흥분하고, 함께 웃어야 한다. 믿음은 말씀으로 생기고 우정은 동행에서 쌓인다.
셋째, 우정은 진실한 사랑에서 나온다. 우정은 신뢰에 기초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우정에 금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반이 물거품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신뢰하셨다. 연약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기셨다. 잘할 때는 칭찬해 주시고 부족할 때는 꾸짖으셨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진실한 사람이 돼야 한다. 진실한 책망과 견책은 상처를 주지 않고, 상대방을 자라게 한다.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진실한 사랑이 없으면 책망은커녕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다. 진리는 강하고 진실에는 힘이 있다. 진실한 사랑이 진정한 관계를 만든다. 그러므로 인도자는 꾸밈없이 말하고, 진솔하게 대화해야 한다. 또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기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또한 인도자는 훈련생들에게 감사할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격식을 갖춰 감사해야 한다.
제자반에서 우정이 쌓이는 소리가 난다. 웃음소리가 그것이다. 그것은 매우 건강한 웃음이다. 또한 제자반에서 우정이 깊어지는 것이 보인다. 미소로 알 수 있다. 이는 매우 건강한 미소다. 제자훈련은 전인적(全人的)인 것이다.
비단 우정은 인도자와 훈련생뿐만 아니라 훈련생 상호 간에도 깊어진다. 그래서 한번 맺어진 제자반 훈련생들 간의 우정은 평생을 간다. 이렇게 되면 서로 얼굴만 봐도 위로가 된다. 우정은 신앙을 강하게 결속하고, 사명의 길을 홀로 걷게 하지 않는다. 우정은 길고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