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교회 박봉만 목사_ 경산 은혜로교회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노 플랜! 왜냐, 계획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대사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계획을 세워 봤지만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만나면서 자꾸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더 이상 계획을 세울 기력조차 없는 주인공의 가슴 아픈, 자조 섞인 말이다.
그러나 영화 대사와는 달리 봉준호 감독은 그 영화를 철저히 계획했다. 등장인물의 이름 하나라도 그냥 짓지 않았다. 영화 속 세트장에 필요한 돌 하나도 미리 다 구상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였을지라도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며 장면 하나하나를 철저히 계획하며 연출했다. 그 결과, 청룡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5관왕을, 뉴욕필름 비평가 온라인 어워즈에서는 3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변화하는 목회 환경, 누수를 줄이려면?
새로운 한 해,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새해에 세운 거창한(?) 계획들이 얼마 되지 않아 원점으로 돌아가고, 이것이 몇 해 반복되면 차라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영화가 철저한 계획과 연출에서 나오듯, 훌륭한 사역도 치밀한 계획과 준비에서 출발한다.
목회자의 삶은 똑같은 1년의 반복이 아니다. 목회가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의 풍성함과 탁월함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흐름에 시간을 맡겨서는 안 된다. 현실이 만만치 않거나 상황이 늘 유동적이라서 계획했던 대로 안 될 때도 많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계획을 세워 달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책임이다.
변화하는 목회 환경을 바라보노라면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안으로는 제도적 교회들이 화석화돼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밖으로는 지금의 형식만으로는 오늘의 시대를 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또다시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하늘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컴퓨터에는 리셋이나 포맷 기능이 있다. 뭔가 잘못됐을 때, 그 기능을 활용하면 깨끗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한번 잘못하면 그것이 그대로 결과로 굳어져 버린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가 매 순간 우리의 부족함을 덮어 주지만, ‘처음부터 계획을 잘 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최대한 미리 줄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올해도 나는 이런 누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하나의 경험담이 될 수도 있고, 묵상론이라 할 수도 있는 노트를 아래와 같이 조심스레 공유해 본다.
변화의 동력을 먼저 찾으라
경산 은혜로교회는 전통 교회다. 처음 부임했을 때, 대부분의 전통 교회가 그런 것처럼 안정된 조직을 통해 교회를 유지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해도 ‘안정빵이 가장 맛있는 빵(?)’이라 말하며 언제나 기득권 문화가 발목을 붙잡을 때가 많았다.
목회자는 이런 전통적 구조와 늘 싸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구조를 그토록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막 2:22) 넣기 위해 낡은 부분은 없는지, 변화에 저해되는 부분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모든 계획에 있어서 첫 출발은 ‘변화의 동력’이다. 바다의 배가 위험해지는 것은 파도가 거칠어질 때가 아니라 엔진이 꺼질 때다. 오늘날의 위기 상황,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실, 가치관 혼돈의 문제들, 세속화의 급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들을 파악해 이들을 변화의 레일에 올려놓을 동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 목회 계획의 출발이다.
프로그램보다 사람에 집중하라
죽어 가는 교회들의 특징은 프로그램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행사를 위한 행사, 일을 위한 일로 피로증후군에 사로잡히기 쉽다.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목회가 방법론이나 성장주의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쪽으로 가게 되면 목회가 하나의 비즈니스로 전락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구미를 충족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프로그램보다 ‘영혼’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목회는 한 영혼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때로는 프로그램도 진행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영혼을 바라봐야 한다. 영혼에의 집중 없이 외적인 것에만 눈을 돌리면 우리의 사역은 한순간 길을 잃고 만다.
다시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복음적 진리와 하나님의 영광.’ 여기에 충실해야 에너지 누수를 막을 수 있다. 본질이 사람을 움직이고, 그 본질이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영혼에 승부를 거는 목회를 하자. ‘영혼에게 말씀을 먹이는 일’, ‘영혼을 섬기는 일’ 그리고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일’, 이 세 가지가 목회를 하는 이유가 돼야 한다.
버리고 단순화시키라
집안 정리를 할 때 쓸데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면 집안이 신선해진다. 아브라함은 본토 아비 집을 버렸을 때 부르심의 삶이 시작됐다. 사막의 교부들도‘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 보다 ‘더 버릴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했다.
목회도 새로운 것을 더하기보다는, 버릴 것은 버리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신년이라고 해서 항상 어떤 새로운 것을 더하려 하기보다는, 강력한 하나를 붙잡고 승부를 걸겠다는 ‘단순 무식함(?)’이 때로는 필요하다. 의외로 풍성함은 채울 때보다 비울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번 한 해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낼 것인가?’ 이 한 가지만 생각해 보라.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하나님을 드러냄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다면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한다. 선택과 집중, 이 단순함에서 파워(power)가 나온다.
나만의 물맷돌을 찾으라
많은 목회자가 비슷한 목회를 하는 것이 문제다. 더러 초행길에서는 남의 길을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남의 목회를 따라 하는 길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자기 목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각 성경 저자들과 독특하게 연합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처럼, 목회 사역도 목회자 개개인이 갖는 독특한 습성과 기질을 사용하신다.
‘나’라는 한 개인은 특별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목회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설교든 목회든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려 내고자 하시는 뭔가가 있음을 발견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내 발에 맞는 신’을 신으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 자신의 특별한 관심 영역을 잘 다듬어서 목회적 개성으로 빛내 보라. 다윗의 물맷돌처럼, 내게 익숙한 것들을 갖고 내게 맞는 사역들을 하나하나 개발해 나가다 보면 목회는 가슴 설레는 사역의 열매들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목회자 자신뿐만 아니라 각 교회들도 저마다 빛내야 할 특징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문화와 전통 속에서 교회들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이에 목회자들은 각 교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잘 활용하면 독특하고도 훌륭한 예술적 배경을 그려 낼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먼저 목회자의 영성부터 살려라
목회자는 의례히 성도들의 문제 해결과 그들의 갈급함을 채우는 일에는 서슴없이 발을 벗고 나선다. 그러나 정작 공동체의 어려움은 ‘목회자 자신에게서 출발한다’는 점을 쉽게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다. 자신을 방치한 채 달려가는 것은 마치 기름을 점검하지 않고 자동차를 주행하는 것과 같다.
사역 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목회자 자신을 위한 계획’이다. 목회자가 복음에 대해서 담금질 없이, 십자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지 않으면 회중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어렵다. 비행기의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 먼저 산소 호흡기를 장착해야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처럼, 목회자도 먼저 자신의 영혼을 채워야 공동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년 사역 계획에서 자기 자신을 기경하는 일을 빼놓지 말라. 신년에는 어떤 종류의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떻게 영성 훈련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 자기 계발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 이것이 공동체에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위로부터 성령의 힘을 받아라
설교를 잘하면 교회가 부흥한다. 심방을 잘하면 교회가 따뜻해진다. 행정을 잘하면 평안을 얻는다. 훈련을 잘하면 저력이 생긴다. 여기에 성령의 권능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천하무적이 된다.
목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사역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에,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목회는 성령에 사로잡힐 때에 능력이 나타난다. 성령께서 열어 놓으신 곳에서 일하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서 반응하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로 따라갈 때 목회가 쉬워진다.
지금 이 시대를 돌파해 낼 힘은 ‘위로부터의 힘’이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이 아니라 에이징 파워(Aging Power)가 중요하다. 다음 세대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지금 세대의 무기력함을 걱정해야 한다. 다음 세대의 문제는 지금 세대의 힘에 달려 있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수상에 대한 꿈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 표현될 수 없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더러 목회가 힘들다고 하지만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 기독교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합쳐도 하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 소망을 바라보며 올 한 해도 힘차게 주어진 목회 여정을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