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우은진 기자
- 성경번역선교회 SIL 정제순 선교사
그리스도의 복음이 문자로 완성되지 못했다면 전달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말은 있지만, 문자를 지니지 못한 민족이 많다.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이 시간에도 우리 주님은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길 바라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한 선교사가 있다. 바로 호주 남태평양 파푸아 뉴기니의 여러 부족 중 메께오 부족의 문자를 만든 장본인인 성경번역선교회 SIL 소속 정제순 선교사(51세)가 그 주인공이다. 커다란 키와 마른 체구가 어느새 현지인을 닮아 버린 듯한 그는 보통 선교사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선교를 해 눈길을 끈다. 그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제자훈련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것이다. 그의 성경번역 사역이 어떻게 제자훈련과 만나 현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어떤 비전들로 확대됐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파푸아뉴기니 메께오 부족으로 인도받다
그는 80년 초 예수를 영접하고 사랑의교회 청년부에서 선교 부분 리더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86년까지 사랑의교회 전도사로서 활동했으며, 당시 미국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 소속 선교사가 한국에 왔을 때, 우연히 대타로 통역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번역 선교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평소 목회자로서 설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던 차에, 성경번역 선교사는 설교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당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스스로 사역자로서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85년 한국 성경번역선교회 창립 때 관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성경번역 사역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그는 아프리카에 가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87년 언어학 훈련을 마치고 영국에서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계속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파푸아뉴기니로 89년에 가게 됐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도서관에서 언어 조사를 해 보니 그 중에서도 메께오 부족의 부족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인구도 많은 부족이었다고 한다. 이 부족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직접 언어조사를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받은 정 선교사는 즉시 성경번역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시 그 곳에는 천주교가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메께오 부족은 신앙하곤 관계없이 자신들의 토속적인 삶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청년 시절에 제자훈련을 접한 정 선교사는 그때 사람이 바글바글한 메께오 부족 속에 제자훈련 정신 하나만 붙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메께오 부족은 돼지하고 같이 살고, 건기 때는 온 마을이 먼지로, 우기 때는 저지대라 돼지 분비물들이 온 마을에 떠다니는 등 환경이 열악했다.
언어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가 구르고, 냉랭한 마을 사람들 속에서 자녀들을 데리고 번역사역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영적 싸움이 강한 곳이었다.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자녀 교육이었는데, 마을에서 홈스쿨링해야 했다. 아내 홍정옥 선교사의 고생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 선교사는 메께오 부족과의 생활은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처음에 메께오 부족은 정 선교사 가족을 소중한 손님으로 환대했었다고 한다. 그것은 식민지 시절 서구 사람이 파푸아뉴기니아에 왔을 때, 자신들이 먹고 살 ‘화물’이라는 것을 들고 왔는데, 이것을 본 현지인들은 그것을 자신의 죽은 조상이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가지고 왔다고 믿는 사교를 만들었다.
이 사교의 본 고장에 정 선교사가 살게 되었는데, 정 선교사를 자신들의 죽은 조상이 살아온 자로 여기고 신주단지처럼 섬겼던 것이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자 정 선교사가 성경을 메께오 부족어로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동안의 태도에서 돌변해 주술사를 동원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메께오 성경을 번역해 제자들을 키워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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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아릴락 통해 선교사 양성할 계획이다
현재 정 선교사는 성경번역선교회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언어학훈련 아시아 교수로서 필리핀 마닐라로 발령받아 2003년부터 재직 중이다. 사역지에선 언어학자로 국내에선 성경번역 선교사로 부르는데, 보안을 위해선 언어학자의 신분이 세계 사역현장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 선교사는 앞으로 언어학을 더 공부해서 국제 NGO로서 도우려 한다. 지난 시간 동안의 선교 경험을 통해 그는 나름대로의 현실적인 선교 방법을 개발했다. 성경 번역과 문맹퇴치라는 언어 관련 사역에 부족인을 키워 제자화시킨 후, 타 부족인을 섬기도록 하는 제자훈련 콘셉트가 바로 그것이다.
정 선교사는 기존 선교사들에게는 교회 개척이나 성경 번역이 우선이었지,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언제 선교사가 철수해야하는가하는 제자훈련 마인드가 빠져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제자훈련 콘셉트를 가지고 제자를 만들어, 그를 통해 또 다른 제자를 배출해 내는 게 선교지에서 시급하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하면, 교회 성장을 목표로 하는 얄팍한 완제품으로 나온 기술만 배우려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열정에 헌신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잘 접목된 배움과 가르침이 어우러진 실천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원리 위에 2006년 1월부터 문을 여는 한동대 통역번역대학원 내 ‘아릴락’(ARILAC,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의 훈련 책임자로서 전문 성경번역 선교사 및 문맹퇴치자, 기타 언어관련 사역자들을 양성할 비전을 품고 있다. 아릴락은 성경번역선교회와 한동대가 협력해서 아직도 자기말로 성경을 읽지 못하는 3천여 종족들에게 2025년까지 그들의 말로 성경번역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선교 훈련을 하는 사업으로 이미 구체적인 계획이 완료됐다.
성경번역에 필요한 음성학과 문맹퇴치, 언어조사, 문화인류학은 물론, 제자훈련 컨셉을 첨가해 재생산되도록 총제적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접근한다는 계획이다. 언어적 측면에서는 국제 SIL에서도 저명한 외국 교수 10명을 초청하고, 제자훈련 면에 있어서는 한국 교수들과 사역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있는 선교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훈련을 지도할 계획이다.
특히 21세기 선교 대상 지역 중 미전도 족속들 대부분이 아시아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정 선교사는 “이 지역을 아시아인들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서양 사람들에게 위탁하지 말고, 동서양의 학문을 한데 접목시키며 아시아인들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는 아시아인들이 훈련시켜야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 70개국에서 온 5,400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 중 2,000명은 성경번역 선교사로서 헌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선교사는 “앞으로 아릴락에서 성경번역과 제자훈련 마인드를 동시에 가르쳐 문자가 없는 민족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구원의 기쁨을 깨닫게 하는 데 남은 생을 헌신할 것”이라며 “한국에서도 뜻있는 이들이 성경번역 사역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