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디사이플
세찬 바람이 여전히 매서운 겨울의 한 복판이야.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며 아파트보다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봐. 병원을 다녀와서인지 쓸쓸함이 한층 더한 것 같다. 어느새 내 나이 서른하고도 일곱이 되어가니 꺾어진 70세도 넘었네. 늘 당신이 놀리던 말이 생각나. 마음은 20대, 몸은 60대라고…. 그러고 보니 애정 표현 제대로 한 적도 없이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 언젠가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강요한 적도 있었지만, 난 그냥 장난스레 지나간 것 같아.
그 옛날 신혼 시절의 사건 하나가 떠올라. 추석에 시댁을 다녀오던 길이었지.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택시는 안 잡히고 속옷까지 다 젖어갈 때쯤, 겨우 승용차 한 대를 세우고 우리 집사람이라도 태워 달라며 사정하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해. 그때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지. 결국 비를 홀딱 맞고 걸어서 집에 왔지만….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참 많이 싸웠지. 늘 골골하고 아파서 당신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해 미안해. 우울증으로 신경질도 참 많이 부렸지. 그래도 때때마다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애쓰던 당신의 모습은 잊지 못할 거야.
오늘도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당신을 억지로 흔들어 깨워 새벽기도에 함께 나갔지. 당신이 기도의 힘이 없으면 더 힘들어한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야. 부서 이동으로 회사 일과 동료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늘 감사해. 오히려 내 몸이 좋지 못해서 걱정거리만 더해 준 것 같아 미안할 뿐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이 계셔.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계시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께선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지.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덧입기를 간구해.
만약 내가 먼저 하나님께 가게 된다면 당신과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플 거야. 언젠가 싸우다가 당신이 한 말이 생각나. 당신만 나를 좋아하고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억울하다고 했지. 그땐 정말 미안했어. 가만히 생각하면 당신은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야.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고. 성격은 다르지만 힘들 때 서로 하나가 되어 주님을 의지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지. 당신이 혼자가 되어도 주님의 제자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갈망할 거야. 직장에선 최선을 다해 인정받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거야. 부모님께도 더욱 효도하겠지. 내가 없어 외롭겠지만 아이들이 한 인격체로 반듯하게 자라서 시집가고 장가가서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그런 멋진 아버지로 자리를 지켜 주었으면 해. 내가 당신의 든든한 기도 중보자가 되어 줄게. 이런 상황에서 친정 식구들이 주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그분들에게도 어서 복음의 싹이 심어져야 하는데….
당신과 아이들이 습관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인격적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세상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허송세월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리라 믿어. 지난 주일에 은혜받은 말씀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이 땅에 있는 우리는 존귀한 자니,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우리에게 있노라.” 주님의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게 하소서.
- 당신의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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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보면, 두 번째 습관이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라’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그 마지막에 되고 싶은 사람을 목표로 살라는 거지요. 유언장을 작성하시면서 집사님이 아직 생명 있을 때에 하실 일들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진 것 같아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집사님이 감당하실 사역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부끄럽지 않는 사역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저도 후회가 남는 유언장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유언장을 남기는 목회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