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이야기

2015년 10월

목회자의 조력자로 산다는 것

사모이야기 조영선 사모_ 화평교회

20여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남자 성도님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사택 근처에 왔는데 잠시 들러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거였다. 마침 목사님이 안 계셔서 “혹시 다음에 목사님 계실 때 오실 수 있겠느냐”라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잠깐이면 된다며 전화를 끊으셨고, 잠시 후 사택 벨이 울렸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부부관계에 대한 호소를 들으면서 나는 이 상담을 어찌 풀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회상담은 목사님의 몫이었다. 나는 남편이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그러니까 심방에 동행한다든지 행정적으로 조력한다든지, 교회일 중 구멍 뚫리는 일을 메우는 역할 정도만 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사모 역할을 꽤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회자뿐 아니라 내게도 상담은 밀려왔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하고, 그들을 돌아봐야 할 위치에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됐다.
그날 이후 나는 상담에 대한 부담을 느껴 고민하다 상담사 과정을 찾아 공부했고, 그 후 10여 년 동안 심리학과 상담에 푹 빠져 지냈다. 얼마나 재미있게 공부하고 상담했는지 시간을 쪼개서 뛰어다녀도, 늦은 밤 귀가해 할 일이 많아도 힘든 줄 몰랐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남편이 늘 박수를 쳐 주고 응원해 주는 격려자 역할을 톡톡히 해 줬기에 더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받은 훈련이 두고두고 목회에 큰 도움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부족할 때 채우시고 단련해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15년 전 상담훈련 과정 중 만난 ‘부모역할 훈련’은 내겐 보너스와도 같았다. 두 아들 양육에 큰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교회 안팎에서, 때로는 선교지에서 자녀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사모 역할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자녀를 잘 양육하고 아내로서 목회자를 잘 섬기기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만일 이 역할만 해야 한다면 나는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각 교회의 필요에 따라, 사모 개인의 은사와 역량에 따라 역할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내 경우도 부교역자 사모 시절이나 교회 개척 초기 때 해야 하는 사역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그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역할을 하든 한 성도로서 교회를 사랑하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고자 행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때마다 새롭게 사역할 수 있는 동기와 의욕을 불어넣어 주시고, 크신 은혜를 부어 주셔서 열매 맺게 하셨다. 또한 나를 언제나 동역자로 여기고 신뢰함으로 사역을 맡겨 준 남편 덕분에 주의 일을 감당하고 성장하게 됐으니 감사한 일이다.
남편을 도와 목회 사역을 하면서 희로애락을 다 헤아릴 수 없으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든 사역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는 내게 인내를 요구하실 때조차도 다른 부분에서는 풍성한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시고 위로하시며 견딜 수 있는 힘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셨다.

 

원치 않는 조언을 해야만 하는 고충
사모들은 누구나 남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게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데다, 남편이 적절치 못한 어휘를 쓴다든지 약간의 실수, 또는 오해를 살 만한 이야기, 수위를 넘는 가족 관련 노출(특히 자녀 입장) 등을 할 때는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설교 모니터링 직무라도 부여받은 것 같은 이끌림으로, 남편에게 말해 줘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에 불타 열심히 적는다. 하지만 그 메모지를 전달한 적은 거의 없다. 가끔 기분이 좋거나 사이가 괜찮을 때 말로 전달하기는 하지만, 아직 27년간 전달하지 못한 메모들이 수첩으로 쌓여 있다.
어느 해인가 교회 설립 기념일이 다가올 즈음, 메모지들을 정리해 노트 한 권을 선물할 테니 받겠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받지 않겠다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끔 설교를 듣다가 ‘아!~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똑같은 실수를 하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또 어떨 땐 ‘내 한 몸도 온전한 인간으로 잘 살아가지도 못하면서 무슨 목회에 협력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격과 삶으로 어떻게 성도들의 삶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낙심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생각하면 다시 힘이 나고 용기를 내게 된다.

 

여전히 꿈꾸며,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기
20대 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회자 사모가 되는 꿈을 꾸고, 제자훈련 목회 비전을 품고 지냈다. 꿈꾸던 대로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의 동역자가 됐건만, 사모라는 모호한 정체성때문에 스스로 갈등하고 남편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자리가 편안하고 행복하다. 부족한 나를 채우시고 고치시며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없이 감사하다.
어느새 훌쩍 50대가 된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나를 만난 한 사람이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 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그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나는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나 아직 그렇지 못하다. 사역과 일상 속에서 세월이 빨리 지나는 것을 느끼며, 문득 가장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도로 남편을 조력하는 것과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해 오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열정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일을 더 늦기 전에 회복하고 싶다.
복음전파!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은 편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는 것이다. 기도생활! 새벽에 몸을 일으키기 힘들 때마다 비몽사몽간에 부르는 나의 노래 ‘힘들어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를 불러본다.
중년기를 지나면서 한 가지 개인적인 소원이 생겼다. 주님께서 그분의 나라로 불러 주시는 날, 그날까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어도 내가 잘할 수 있고, 주님 안에서 가치 있는 일을 마지막 날까지 하고 싶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

 

 

 

조영선 사모는 최상태 목사의 아내이며 가정교회의 Assistant Director와 부모역할(APT)교육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