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심정섭 대표_ 탈무드교육전문가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의 사명을 받고 난 후 치즈와 버터를 끊고, 최소한의 빵과 물만 먹고 생활하며, 딱딱한 침대에서 사는 삶을 실천해 보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많은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절약하여 남겨진 비용을 헌금하여 구제와 선교에 쓰이도록 했다.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현대인의 삶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어떠한가? 하루 세 끼를 먹고,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하며 정보를 검색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커피와 술로 해결하고, 여러 가지 오락으로 재미를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문명의 혜택을 없애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소로우의 소박한 삶의 실험
1845년 3월 말, 하버드를 졸업한 27세의 젊은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6~1862)가 월든 호숫가 숲 속에서 도끼질을 하며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통나무를 깎아 기둥과 지붕을 만들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버려진 집에서 의자, 창문, 문, 못 등의 부자재를 구해 왔다. 이렇게 가로 4.6미터, 세로 3미터, 높이 2.4미터의 작은 집을 하나 짓고 그 안에 나무 침대, 탁자, 책상, 벽난로와 의자 등 최소한의 생활 도구를 들였다. 이렇게 통나무집을 하나 짓는 데 28달러 정도의 비용을 사용했다.
당시 하버드대학교의 기숙사 1년 방값이 30달러였다고 하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신이 살 거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1년 중에 6주 정도는 측량과 목수 일을 해서 13달러 34센트를 벌고, 자신이 키운 호밀과 옥수수 등의 농산물을 시장에 팔아 23달러 24센트를 벌었다. 그리고 8개월의 식비로 8달러 74센트를, 의복비와 기타 비용에 8달러 40센트를 사용했다.
이렇게 의식주를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는 산책을 하고, 호수와 숲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책을 읽고 사색을 했으며,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자연에서 배우고 느낀 바를 기록하고 책으로 썼다. 호숫가 주변 동식물을 기록하고 호수의 크기를 측량했다. 그리고 빵 반죽에 건포도를 넣은 제빵 기술도 개발했다.
산업화된 문명사회 속에서도 ‘일한 만큼만 먹고, 먹을 만큼만 생산한다’라는 소박한 삶의 원리를 실천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이 청년의 실험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사회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삶은 훨씬 여유 있고 행복했다. 소로우는 왜 사람들이 돈과 명예의 성취라는 하나의 성공의 원리만을 생각하고, 그 하나를 위해 많은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가에 의심을 가졌다. 그리고 남들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삶의 수준이라는 것의 훨씬 낮은 단계에서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며 실천했다. 소로우에게는 약간 범신론적 무정부주의적인 태도가 있지만, 그의 실험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필요 이상의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가며 삶을 유지한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를 도와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한국에서의 생활비와 필리핀 가족들의 생활비를 대고 나면 거의 남는 돈이 없다.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한 번은 필리핀 형제들을 위한 추석 세미나에서 ‘기독교인의 근검절약의 삶’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청지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용하고 ‘일용할 양식’ 이외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 절약의 생활 태도를 갖자고 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핸드폰과 인터넷을 끊자고 했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대부분 비싼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집에 인터넷 망이 있고, 이를 통해 필리핀 TV를 보고 가족들과 화상 채팅을 한다. 여기에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을 쓰고, 핸드폰과 컴퓨터 구입으로 매달 몇 십만 원의 할부를 낸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연락은 공장 전화를 사용하면 된다. 가족과의 통화는 국제전화 카드를 쓰면 되고, 화상 통화 대신 편지와 사진을 보내 정겹게 연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높은 산업적 삶의 수준에 맞춰져서, 핸드폰과 인터넷 없는 삶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소비의 노예가 되어 버린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소비하라고 하고, 새로운 제품을 사는 데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사용하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그 과정에서 주체적인 소비자가 되지 못하고, 광고가 만들어 놓은 삶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 힘들게 돈을 벌어 그 삶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과연 이러한 세상의 기준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대로 이 세대의 풍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살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눔을 위한 청빈의 삶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은 영어로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이다. 직역하면 “우리에게 오늘, 오늘 먹을 빵을 주옵시고”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우리’와 ‘오늘’이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앞으로 한 달 혹은 일 년 동안 나만 먹을 빵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크리스천이 청빈하고 검약하게 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먹고 남은 빵을 굶주리는 형제들을 위해 나누기 위함이다.
마침 4월은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 기간이다. 그리고 부활절 전 주는 고난주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건한 시간이다. 금식을 통해서 삶의 거품과 찌꺼기를 씻어내고,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함과 동시에 세상의 정보와 지식, 소비의 절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심정섭 대표는 영어 강의를 하며 하비루 미션에서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 사역과 필리핀 선교를 하는 자비량 사역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탈무드 교육이론과 유대인 가정교육 원리(blog.naver.com/jonathanshim)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