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박성남 전도사_라이브교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주인의 재산을 위탁받아 관리한 세 종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비유를 계속 묵상하게 된다.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전에 공단사역을 할 때 탁아방 이름을 ‘둘다섯’이라고 지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경우를 더 많이 묵상하게 됐던 것 같다. 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두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을까? 달란트 비유의 귀결로 미루어 본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한 달란트만 남기면 주인으로부터 귀한 칭찬을 틀림없이 받았을 것이다.
무엇이 한 달란트만 남기면 된다는 선택을 방해했을까?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재능대로 다르게 맡기신 달란트
달란트에는 차등이 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각각 그 재능대로(마 25:15) 맡기신 것이다. 나는 한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 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른바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나와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읽어야 할 책이 쌓이면 흥분하며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쌓인 책의 높이가 높아질수록 스트레스가 쌓였다. 밀린 숙제를 해치운 것일 뿐 새로운 것을 얻었다는 기쁨으로 다음 책을 잡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약간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것에 평안이 있다. 다른 것에서 재능을 발견하면 되니까.
공부에 관한 것뿐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각 사람이 받은 바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탁월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을지 모르나, 어떤 분야든 탁월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주인도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달리 맡긴 것이다.
역량대로 평가받는 달란트 사용
다음은 맡긴 달란트의 평가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성경에 기록된 주인의 칭찬 내용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한 글자도 다르지 않게 똑같다는 것이다(마 25:21,23). 비교해서 본다면 이익을 남긴 결과가 150%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주인은 똑같이 칭찬을 한 것이다. 주인은 달란트를 맡길 때도 역량대로 맡겼지만 평가할 때도 역량대로 평가를 한 것이다. 칭찬은 꼭 같이 하셨으나, 평가기준은 그 사람의 역량대로 달리 가지신 것이다.
성 프란시스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받은 은혜를 당신이 받았다면 당신은 나보다 더 거룩한 사람이 됐을 것이요”라고 했다고 한다. 성 프란시스에게 있어 그의 구별된 삶은 많은 은혜를 받은 결과로 당연히 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우월감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만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은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또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이신가. 여기서 나 같은 한 달란트 받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쉼을 얻는다. “아, 좋으신 하나님! 제게도 희망이 있군요. 제 몫만 하면 되니까요.”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
주인의 평가기준 외에도 그 내용을 조금 유심히 보면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을 거론하고 계신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마 25:21, 23) 다섯과 둘을 남겼지만 공히 그 사람에게 ‘작은 일’에 해당되는 것에 충성하였다고 칭찬하셨다.
작은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 됨됨이의 현주소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은 흔히 무시하기 쉽고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작은 일을 맡기면서 지켜보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일이 크면 그 규모 때문에라도 신경을 쓰게 되어 있고 그것을 보는 남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꼭 한두 마디 거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모양새 갖추기에 급급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충성되기가 쉬운 면이 있다.
달란트의 비유가 기록된 마태복음 25장 뒷부분에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 두 그룹의 사람이 구별되는 분기점은 바로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떻게 했느냐로 판가름 하신다는 것이다. ‘작은 일’,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바로 주인의 칭찬을 받느냐 책망을 듣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는’(히 13:2) 삶에 익숙해져야 주인의 칭찬을 제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이 책망을 받아 마땅한 것은 궁극적으로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로 그에게 벅찬 일이 아니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용기를 드리고자 우리 교회의 모습을 밝힌다면 어른교인 50명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50명 정도 모인다. 시작한 지 몇 년이 안 된 교회가 아니라 11년째 되는 교회다. 재작년에는 대안학교(릭스쿨 Live International Christian School)를 시작했다. 현재 학생은 13명이고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있다. 내가 내 그릇을 안 다음부터는 현재 우리 교회의 규모와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무수히 지나치는 ‘작은 것’과 ‘작은 자’들에게 성실하게 임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재능이 무엇인 것 같냐고 가끔 묻는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듣기 좋은 대답을 하지만 내 스스로 보기에 내 재능은 ‘수다’인 것 같다. 조금 더 꾸민다면 ‘괜찮은 수다’이다. 20대부터 나는 교회에서 수다를 즐겼다. 내용 있는 말보다 내용 없는 말에 더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괜찮은 수다로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밝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런 하찮은 수다도 주님을 위해 드려진다면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한 달란트가 작은 자를 위해 쓰이는 순간이다. 이런 괜찮은 수다는 대안학교에서 저학년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데 매우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다. 선생님들이 여럿 있지만 내가 인기 최고다(오판일지 모르나). 이런 내 모습과 재능에 대해서 전보다 조금씩 점수를 주기로 했다. 바로 달란트의 비유에서 배운 것이다.
박성남 전도사는 연세대학교 공대, 합동신학원과 미국 리폼드신학원을 졸업했다. 스탁빌 한인교회와 사랑의교회 젊은이선교, 이랜드 부사장으로 섬겼으며, 현재는 라이브교회를 담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