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임성빈 목사 _ 장신대 교수
“완전히 새로운 전망을 얻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나는 매일 오후 새로운 전망을 얻을 수 있다. 두세 시간의 산책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다준다. 사실 반경 10마일(16킬로미터), 즉 오후 산책 거리 안에서 볼 수 있는 경치와 인간의 칠십 평생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19세기 위대한 이상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산책과 걷기에 대한 예찬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문화선교연구원이 선정한 문화계 10대 뉴스 중 하나로 ‘걷기 열풍’이 선정될 만큼 걷기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2009년 히트상품으로 ‘도보체험관광’을 들고 있을 정도이다.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래길, 강화도 마실길 등 이미 유명해진 곳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 새로운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면서 걷기는 이제 일상화된 생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가는 분위기다.
걷기와 신앙의 만남: 순례의 여정
사실 서구에서의 걷기 여행, 이른바 순례여행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서구에는 해마다 수백만 사람들이 걷기를 통한 여행 이른바 순례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근 한국 사회에 알려진 카미노 산티아고(스페인 생장 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길로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걸었던 길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 올레길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만 하더라도 매년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걷는다고 한다. 그들은 800킬로미터나 되는 ‘카미노 산티아고’의 길, 뜨거운 태양, 무거운 배낭, 낮선 이들과의 편치 않은 잠자리를 마다 않고 걷고 또 걷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산티아고에 있는 산티아고 성당에 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다. 도보순례자들은 고된 걷기의 여정을 통하여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차츰차츰 찾아간다. 순례의 여정을 담은 책들의 저자들은 한결 같이 그 길이 육체의 여정이 아니라 내면의 여정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걷기와 신앙의 길
요즈음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걷기 열풍도 사실은 단지 육체적 웰빙의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는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신과 영혼에 관한 쉼과 회복에 대한 갈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제는 다른 삶의 방식을 살고 싶다는 것,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열망의 산물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걷기 현상은 건강을 추구하려는 단순한 욕망 이상의 그 무엇, 즉 경쟁, 속도, 결과 중심주의로 대표되는 이른바 압축성장의 신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한다. 즉 걷기라는 느린 과정 속에서 자신과 삶의 의미를 탐색하려는 인간 본연의 의미 추구 과정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이 걷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 의미를 곱씹어볼수록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신앙의 상징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구원사역의 첫 여정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한다. 아브라함이 받은 첫 과제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곳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고대에는 오늘과 같은 운송수단이 없었기에 그 명령은 곧 한없는 걷기 명령과도 같았다. 아브라함은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미지의 길을 걷고 또 걸으며 그는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곱씹어보는 일들을 계속하여 하지 않았을까? 걷기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소명을 발견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신앙의 여정과 걸음의 여정은 어쩌면 하나일 수도 있다. 걷기를 통해 소명을 발견한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아들을 바치러 가는 그 처절한 신앙 성숙의 여정도 결국 3일 동안의 모리아로의 걷기 여정이었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행했던 광야의 여정도 40년간의 걷기 여정이었다. 사역에 지친 엘리야가 호렙으로 가는 길도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여정이었고, 주님의 구원사역의 여정도 결국은 나사렛에서 골고다까지의 걸음의 여정이었다.
그러므로 걸음을 통해 걸어가는 그 길은 신앙의 길로 상징될 수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길’이 제자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고, 신약성경 히브리서(히브리서 11:13)와 베드로전서(2:11)에서는 그리스도인을 끝임없이 길을 걷는 나그네요 순례자이며 객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사순절과 걷기, 그 신앙적 의미
걷는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 천성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순례자의 의미를 배운다. 문화선교연구원이 사순절 기간에 제안하는 문화금식 캠페인 중에 자가용 이용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웬만한 거리는 걸어보자는 운동이 있다. 걷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사순절의 특별한 시간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소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걷기가 주는 사유의 기쁨과 신앙적 유익을 누려봄이 어떨까, 특별히 늘 차를 타고 허겁지겁 가던 예배당이 아니라(역사상으로 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서 교회에 갔다) 조금은 시간을 갖고 걸어가며 예배를 준비하는 그럼 걸음의 예배를 준비해봄이 어떨까.
교회 초기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어르신들은 몇 분(分)이 아니라 하루 이틀을 꼬박 걸어 교회당에 갔고 예배를 드렸다.이렇게 먼 길을 걷고 걸어 도착한 교회당에서 드리는 감격적인 예배와 지금처럼 자동차로 쉽게 오가며 드리는 예배의 느낌을 어떻게 같이 견주어볼 수 있을까?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쾌락에 물들어 있는 오늘의 문화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며 온전한 뜻을 분별하는 길을 함께 걷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소망한다!
임성빈 교수는 장신대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거쳐 루이빌 신학교(M.A.)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Ph.D.)를 졸업했다. 현재는 장신대 교수이며, 문화선교연구원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문화의 한계를 넘어서>, <흔들리는 젊음, 결혼, 가정, 바로 세우기>, <경제위기를 넘어선 기독교 문화>(이상 예영커뮤니케이션 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