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박세종 목사 _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외래교수
전 세계 약 25억 인구가 매일 커피를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루의 시작을 모닝커피로 시작하여 식사 후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무언가 마무리를 하지 않은 듯 허전한 느낌이 들 것 같고, 나른한 오후에 한 잔의 커피로 정신을 가다듬고 멋지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 습관 가운데 하나로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커피이다. 데이트 신청을 할 때도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약속을 할 때도 “언제 커피 한 잔 합시다” 손님이 오면 의례 인사와 함께 나누는 말인 “커피 한 잔 드릴까요?”이다. 그만큼 커피는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그리고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커피의 어원
커피(coffee)의 명칭은 카와(qahwa 또는 khawah)라는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그 기원은 2가지 설로 나뉜다. 먼저, 약 2700여 년 전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Kaffa) 지역의 험악한 산악지대에서 염소치기를 하던 칼디(Kaldi)라는 소년이 자신이 키우던 염소가 한 빨간 열매를 따먹으면 잠들지 않고 날뛰는 모습을 보고서 호기심에 직접 그 열매를 따먹었더니, 온몸에 힘이 넘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가 발견한 빨간 열매의 씨앗을 카파(Kaffa)라는 지역에서 발견하였다고 해서 커피였다는 전설이다.
다른 하나는 예멘에 살고 있던 이슬람 사제인 알리 벤 오마르 알 샤딜리(Ali ben Omar al-Ahasdili)라는 사제가 1258년경 정적들의 모함으로 인하여 사막으로 쫓겨나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고통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붉은 열매가 달린 작은 나무를 보고 그 열매를 따먹었더니 놀랍게도 피로와 고통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게 되었다. 그는 그 후 이 열매를 두고 알라(신)의 선물이자 축복이라 믿으며, 이 열매를 달여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했다.
그렇게 커피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출발하여 페르시아(15세기 중엽), 터키(16세기 중반)를 너머 유럽(17세기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과 북미(18세기)를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의 커피역사
한국에 처음 커피가 들어오게 된 배경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뒤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해 있던(아관파천) 시기에 러시아 공사 웨베르가 고종과 담소를 나누기 위하여 커피를 권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동안 미군들에 의하여 커피가 대중들에게 깊이 들어오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한국의 커피문화가 소위 ‘다방’과 ‘음악실’을 중심으로 평범한 도시인들과 대학생들에게 휴식공간이나 대화의 장소로 활용되어졌다면,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기점으로 19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자판기 커피의 등장과 함께 인스턴트 커피의 대량공급이 가능해졌고, 이것은 가정 안에 커피가 자리매김하게 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인스턴트 커피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편화되면서 더욱 편리하게 일회성 커피에 맛이 들여지는 반면, 미국을 본사로 둔 프랜차이즈화 된 원두 커피점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입성을 하면서 차별화된 전략, 테이크아웃(take out)을 제시해 커피점이 또 하나의 젊은이들의 문화 공간으로 정착하게 됐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영역에 커피가 깊숙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커피가 전통적으로 숭늉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던 한국인들에게 소개된 이래, 암울했던 민족의 아픔과 설움을 달래는 자리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만남과 소통을 위한 현대인의 성수(聖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떠나, 어찌 보면 커피에 의하여 각성된 의식이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통 면에서 볼 때, 커피는 불공정성과 극심한 빈부를 만든 주범이 되었다. 커피재배는 혹독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농업으로서 원주민 수가 점점 줄어들자, 서인도제도에서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끌고 와서 커피농장에서 강제로 일하게 하였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가혹한 노동의현장(커피농장)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을 알고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멋지게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우아하게 마시는 모습은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죄를 짓는 모습으로 비추어지지 않을까 반성해 본다.
하지만 커피를 통해 발생하는 부의 대부분은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중간유통업자와 최종 가공업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 커피 농가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사회단체들과 환경보호단체들은 커피 잔을 새롭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올바른 커피 소비운동’을 통하여 정당한 수익을 제3세계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사회정의 실현과 환경보전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커피는 올바른 생산과 유통을 통하여 제값을 치르고 거래한다는 목적으로 ‘공정거래 커피’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한국에도 이러한 공정거래 커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실례로 세계 최대 테이크 아웃 커피업체인 스타벅스는 최저 생계임금을 인부들에게 지불하고, 숲을 파괴하지 않으며, 사회가 필요한 환경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커피만을 구입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 간에서 만남과 소통의 도구인 커피를 바르게 알고 마신다면 정의와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간과해 버릴 수도 있는 삶의 작은 한 구석구석을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하며 행동하는 것은, 생명을 내어 놓으며 지키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작은 신앙의 실천이자, 새로운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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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종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 신대원(M. Div.)과 장로회신학대학원 대학원(Th. M.)을 졸업했으며, 독일 마인츠대학교 개신교신학부 졸업(Dr. theol)했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 문화’ 외래교수와 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