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김원일 _ 소설가
달력의 마지막, 한 해를 마감하는 끝자락에 성탄절이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연습이 없는 우리 삶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결산하며 되새김질 해보라는 뜻 같기도 하다.
먹을 것을 기대하며 찾았던 크리스마스
삯바느질로 사남매를 가장 없이 혼자 키우시고 공부시키신 어머니는 겨울이 오면 유달리 싫어하시며 긴 한숨과 함께 ‘이 겨울을 어떻게 넘길꼬.’ 푸념하시곤 했다. 양식과 땔감과 김장을 초가을부터 걱정하며 시늉으로나마 갖추어 놓기 위해 밤늦도록 재봉틀에서 손을 놓지 못하셨다.
6.25전쟁 뒤끝이라 하루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이 드물고 군불도 못 때는 집도 많았다. 세끼 중 한 끼는 수제비나 죽, 국수로 보내던 시절이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먹을 것을 기대하면서 친구 따라 교회당에 가본 적도 있었다. 집에서는 구경도 못해본 과자, 통조림을 얻어먹고는 좋아했던 일과,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해내면 찐고구마를 나누어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년시절의 춥고 쓸쓸했던 크리스마스
몇 해 전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되어 한국 작가들이 현지에서 작품 낭독회와 토론회를 가졌다. 나 역시 참석한 길에 관광지 하이델베르크를 둘러보았다. 하이델베르크는 벌써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내다 걸은 점방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어린 외손자들에게 선물로 줄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사다가 문득, 유년시절의 그 쓸쓸하고도 추웠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 마음이 울적해졌다. 바느질로 우리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는 연말연시가 가장 일감이 밀리는 대목이었다.
크리스마스날 밤도 어머니의 재봉틀 돌리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세든 단칸 냉돌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돌아앉은 우리 형제들은 길거리에 떠는 신세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자위하였다. 어머니는 재봉틀을 돌리며 말씀하셨다.
“길거리에 나가봐라. 지금도 묵고 살겠다고 군고구마 파는 사람, 군밤 파는 사람, 너거들만한 껌팔이 아아들도 길거리에 널렸데이. 저 소리 들어봐라.”
가난한 시절에 이미 찾아오셨던 예수님
나는 청년 시절까지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보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기 예수께서 마구간 말구유에서 탄생했다는 그 명절은 서양 사람이나, 독실한 신도들에게나 기쁜 날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실 그날은 만유의 하나님의 아들이 초라한 마구간의 거친 풍경에 온몸을 맡겨야 했던 날이다. 짐승들의 오물 냄새에 아기 예수는 그 후각을 버리셨다. 그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몸이 인간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죽임 당하러 오신 첫 날이었다. 골목 꼭대기에 있던 어느 개척 교회에 다니던 시절 들었던 한 찬양 가사가 떠오른다.
귀중한 보배함을 주 앞에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맘도 다함께 바치세.
진리는 오묘하고 사랑은 성결해. 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일세.
주께서 주신 은혜 한없이 크오니 주께서 주신 것을 감사히 바치세.
기쁨은 충만하고 소망은 불변해. 정성과 맘을 다해 경배를 드리세.
어쩌면 아기 예수께서는 내 삶의 오래 전 그날, 어머니가 재봉틀 돌리시던 세든 단칸방의 그 외로웠던 크리스마스날 밤에 이미 내 곁을 찾아오셨던 것 같다.
김원일 소설가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단국대 대학원 국문학 석사를 마쳤다. 1966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1961년 알제리아>가 당선됐으며, <어둠의 축제>, 〈마당깊은 집〉, 〈어둠의 혼〉, 〈불의 제전〉등 분단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썼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경동교회에 출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