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8년 07월

미얀마를 살려 주세요

문화읽기 조현삼 목사 _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방콕에서 양곤을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방콕포스트> 1면에 UN이 미얀마 사이클론 사망자 수를 10만 2천 명으로 발표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2008년 5월 12일 월요일 저녁, 양곤 공항에 도착해 사흘 전에 먼저 도착한 우리 팀과 합류했다. 우리 팀 여섯 명과 현지 선교사 세 명, 이렇게 아홉 명으로 구성된 한국 교회 긴급재난구호팀은 양곤 공항에서 뻐떼인을 향해 그 밤에 달렸다.
사이클론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곳은 인도양과 인접해 있는 라부따이다. 우리 팀은 이곳을 구호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외국인 출입이 금지된 지역인 라부따. 미얀마 정부는 이곳에 외국 구호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철수하지 않는 외국 구호요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상황이 그렇지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외면할 수 없었다.
뻐떼인은 라부따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이다. 그곳에서 1박을 한 우리 팀들은 다음 날 아침 그곳의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이재민 수용소를 돌아보고, 라부따를 향해 비포장도로를 다섯 시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현지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현장 구호소에는 우리가 보낸 쌀 10톤과 디젤 등이 도착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미얀마로 인도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 팀은 작은 배 하나를 빌렸다. 혹시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쌀 두 포를 싣고 갔다. 40분 정도 가면서 우리 팀원들 모두는 다 넋을 놓았다. 세계 곳곳에 참 많은 재난 현장을 다녀 보았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강 좌우에 시신들이 그대로 널려 있었다. 강에서는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배가 도착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기가 꺼닝공 마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집이 이번 사이클론으로 쓸려 내려가 우리 눈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 이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400명이 죽었고, 1,500명이 살아남았다고 했다. 아이들과 아기를 안은 엄마도 보였다.
도무지 그들을 그대로 두고 올 수 없었다. 그들을 향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먹을 쌀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소금, 지붕용 천막, 이불, 옷, 양념, 디젤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여기 오게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랑과 한국 교회의 사랑을 갖고 여기 왔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잘 살아달라고 했다.
마을 주민 몇 사람을 배에 태우고 나왔다. 우리 팀원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그 마을 주민 대표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쌀 10톤, 천막 3,000미터, 옷, 이불, 소금, 분유, 고추, 디젤, 식용유, 물 등을 구입했다. 라부따에 있는 가게 몇을 다 비웠다. 따라 나온 마을 주민들은 크게 놀라며 감격해했다. 모두 아들딸을 잃고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함박미소를 지으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오히려 그게 안쓰러웠다.
돈이 있어도 구호를 할 수 없고, 구호품을 구입해도 그것을 전달할 수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셨고 그들을 입히셨다.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을 떠나야 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중국으로 가다
미얀마 구호 중에 중국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왔다. 주일을 보내고 5월 19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나를 포함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긴급구호팀 4명은 중국 청두(成都)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공항 로비는 피난민들로 가득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6~7도를 예상하는 여진이 하루 이틀 사이에 청두에 일어날 것이라는 발표를 정부가 했다고 했다.  
방금 전 타고 온 비행기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구호를 할 것인가 결정을 해야 했다. 구호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청두에서의 첫 밤을 보내고, 아침에 지진피해 현장을 향해 떠났다. 중국정부가 긴급구호차량을 위해 구별해 놓은 차선을 따라 1시간을 달려 두장옌에 갔다가 우리의 도움이 좀 더 필요한 곳을 찾아 진양지 쪽으로 좀 더 들어갔다.
검문소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이런 일은 늘 겪는 일이다. 마침 그곳이 고향인 렌터카 기사가 험하긴 하지만 돌아가는 길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그리로 인도했다. 이번 지진으로 여동생을 잃은 기사다. 재난을 당한 동족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곧 지진의 참상을 그대로 간직한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붕괴 위험이 있어 급히 물을 방류한 주핑푸 댐과 댐 좌우의 산은 대부분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지진으로 산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원자바오 총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길을 뚫으라고 했던 바로 위험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긴장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드디어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이 나타났다. 원촨현에 속한 쉬옌커우쩐이었다.
우리로 하면 읍장쯤 되는 쩐장을 만나고, 위로의 말을 전하며 한국 교회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이불 3천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밤이 되면 산간지역이기 때문에 추웠다. 이불 값을 계산해 보지도 않고 그것을 우리가 섬기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맞은 셋째 날, 하나님의 은혜로 허화츠 시장에서 이불 3천 장을 구입했다. 대형트럭 3대에 구호품을 다 싣고 돌아오니 자정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팀들은 구호품을 실은 3대 트럭과 함께 쉬옌커우쩐을 다시 찾아가 한국과 한국 교회의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양주석은 중국과 중국인민을 대표해서 두 손을 모아 깊이 감사를 표했다.

 

길이 없는 가운데서도 길을 만드신 하나님
구호품을 전달하고 두장엔에 도착해서야 나는 마음으로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팀들 모두 표현을 안했을 뿐이지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 팀들 모두를 살려주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여전히 길이 없는 가운데서도 길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만드신 길로 가면 거기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음을 이번에도 체험했다.
중국에는 지진 때문에 죽은 사람은 있어도 그 후에 구호를 받지 못해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미얀마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 팀이 들어갔던 라부따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외국인 구호팀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안에는 사이클론에서 어렵게 살아난 사람들의 생명의 불이 꺼져가고 있다.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살려야 한다. 우리는 2차로 미얀마에 한국 교회 이름으로 쌀 100톤을 이재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외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엔 현지인 동역자들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1킬로그램에 우리 돈 400원인 쌀은 그들에게는 양식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한국 교회 재정이 한국 교회 이름으로 재난 현장에서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오랜 소원이 올해에 이루어졌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를 계기로 한국교회봉사단과 한국교회희망연대 등 한국 교회 이름을 선명하게 드러낸 봉사단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 한국교회봉사단이 서해안뿐 아니라 이번에 미얀마와 중국을 돕는 일에도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조현삼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 광염교회 담임목사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