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관

2015년 07월

휴식을 통해 얻는 참된 안식의 영성

기독교세계관 추태화 교수_ 안양대학교

현대인들의 생각 속에 이분법적으로 고착된 것이 있다. 노동과 휴식에 대한 관념이다. 노동은 생존을 위해, 소위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필요불가결한 행위이고 힘들고 피곤해도 노동 전선에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노동의 피로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휴식을 취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일하고 살아가는 행위가 단지 먹고사는 일에 기초한다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척박할 것이다. 노동과 휴식을 분리하기보다 이 두 영역을 물 흐르듯 교차시킬 때에야 삶의 깊은 성숙을 경험할 수 있다. 

 

휴식, 육체적 쉼 그 이상
인간은 자신과 삶의 의미를 고양시키고 승화시키는 형이상학적 비상을 추구하는 창조적 존재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 가운데 인간을 존재케 하셨을 때 완벽한 탄성이 있었다. 우리 인생이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신적 경탄이 있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따라서 우리의 노동과 휴식은 심히 좋아야 한다. 노동이 저주가 아니라 복임을 확신할 때,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자기발견, 자아실현, 자아성취 등으로 확산되는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행복과 감사로 이어지게 된다.
어떤 이가 일로 인해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휴식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또 어떤 이가 일중독에 빠져 있다면 휴가가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은 일에 매몰돼 가는 사람을 구해 줄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휴식이 가져오는 소극적 효과다.
휴식에는 육체적 쉼을 통해 얻는 유익 그 이상의 것이 있다. 휴식은 보다 적극적인 효과를 내포한다. 휴식, 휴가의 원초적 의미는 노동 현장에서 느끼지 못했던 일이 주는 긍정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데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일에 매몰돼 일과 자아를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것과, 일상에서 간과한 많은 의미들을 휴식을 통해 성찰하게 된다. 휴식은 삶의 균형 감각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노동은 좋은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반복되는 행위로 인해 그 의미를 잃기 쉽다. 반면, 휴식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질서를 새롭게 깨닫게 한다. 또 노동의 뒤안길로 감춰진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고, 점점 짙어져 가는 자아 소실감을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 구성원과 소원해진 일상을 일으켜 세우고, 내면에 감춰진 자아 욕구와 행복감을 성취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휴식은 재창조(Re-creation)의 발판이 된다. 

 

쉼 자체가 창조의 한 영역
이렇듯 휴식은 창조와 긴밀한 연관을 갖기에 노동의 연장이요, 삶의 본질적 요소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휴가를 즐기는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문화산업이라 불리는 레저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내놓는 각종 휴가 유혹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처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휴가 따라잡기로 인해 오히려 휴식의 의미를 잃기도 한다.
따라서 휴식과 휴가를 즐기는 방식이 자기주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디가 좋다고 우르르 몰려가고, 뭐가 좋다고 우르르 사 먹고, 사 입는 소비 형태의 휴식은 지양해야 한다. 그럴 경우 길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출입구에서부터 오랜 기다림으로 지치거나, 아니면 ‘엥, 낚였네’라는 통탄을 내뱉게 될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가족만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면, 그래서 휴가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맛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휴식의 가치는 충분히 빛날 것이다. 휴식이 골칫거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다시 인식해야 한다. 휴식은 노동의 말미에 오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다. 휴식과 휴가는 존재의 거대한 은유(Metaphor)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엿새 뒤 일곱째 날에 안식(Rest)하셨다고 말한다. 안식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의 운행과 질서에 깃들어 있는 우주적 원리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시느라 피곤하셔서 쉬신 것이 아니다.
안식 자체가 창조의 한 영역이요, 창조의 마침표다. 이 점이 휴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게 한다. 단지 일했기 때문에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쉼이 한 권리로 내재해 있기 때문에 휴식을 누려야 한다. 휴식은 노동의 피해 보상이 아니다. 휴식은 노동의 완성을 포함한다. 따라서 휴식이 휴식할 수 있는 권리를 찾게 하는 것이 휴식의 진정한 의미다. 노동은 휴식에서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휴식의 속뜻은 주님과 함께하는 평화
휴식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영원한 원형(Archetype)의 한 부분이다. 지상에서 드러내시는 하나님 나라의 한 장면이다. 안식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 중 하나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Eternal Peace)가 휴식의 원형이다. 우리가 일하며 쉬는 것은 바로 영원한 쉼, 영원한 휴식,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우리가 찾는 휴식의 속뜻은 주님과 함께하는 평화다. 주 예수께서 아버지 집에 예비하신 거처에서 누리는 평화다(요 14:2~3). 일상의 휴식은 영원한 안식의 아주 작은 단위, 그 질적 변용(變容)의 한 풍경이다. 일상의 노동 속에서 휴식을 누림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고대할 수 있는 성도의 삶이 신령하고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