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관

2015년 11월

진정한 축복을 찾아서

기독교세계관 추태화 교수_ 안양대학교

복을 좋아하는 민족
종종 미디어에는 행복 지수에 관한 통계가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와 물질의 풍요가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구 몇몇 나라와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소득이 비교적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이 높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행복의 진정한 의미가 따로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샤머니즘 색채가 짙은 시베리아 문화권에 있는 우리나라는 유독 복(福)을 좋아한다. 밥그릇에도, 수저에도, 장롱 등 생활용품에 ‘복’ 자를 새겨 넣는다. 또 복에 관한 언어도 많다. ‘얼굴이 복 받을 상이네’, ‘하는 짓이 복 받을 만하네’, ‘그러니 복이 안 오고 배기나’, ‘조심해라 복 달아난다’, ‘박복한 사람’ 등 우리는 은연중에 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불길한 징조를 피하고 삶의 풍요를 갈구하는 이들은 이를 종교에까지 결부시켰다. 기복(祈福) 신앙은 복에 목숨 거는 이들의 종교가 돼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귀신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옛 풍습에는 복을 비는 마음이 전제돼 있다. 그래서 귀신을 화나게 하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믿어 귀신에 벌벌 떨었다. 안방 귀신, 마루 귀신, 부엌 귀신, 심지어 달걀귀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에 귀신이 붙어 있다고 생각해 밥을 짓거나 물을 뜰 때도 ‘천지신명께 비나이다’라고 말하며 두 손을 비벼 기도했다. 이런 행위도 복과 연결된다.
옛날이야기 속에도 그 바탕에는 복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흥부전, 토끼전 등은 잘 먹고 잘 살게 됐다는 해피엔딩으로 마친다. 탈 없이 살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갈망을 표현한 것이다. 기복 신앙이 지배적인 문화는 복음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욕심과 죽음에 종노릇하며, 복에 목매어 사는 이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과 축복이 피할 수 없는 내적 희구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성경이 이 복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 단어사전에서 ‘복’을 검색하면 구약 738, 신약 257 곳에 ‘복’이란 단어가 기록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복은 성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은 무엇인가? 첫째,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때와 맞는 것이 복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 씨를 뿌리는 것, 햇빛과 바람을 통해 자라는 것,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추수하게 되는 것 모두 적절한 시간에 이뤄져야 한다. 비가 오더라도 ‘복된 소낙비’(겔 34:26)가 돼야 한다. 믿음의 백성은 자연 현상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운행되기를 기도한다.
둘째, 진정한 복은 의인들이 받는 행위의 열매다(사 3:10).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을 행하는 자들에게 공평과 평안의 은혜를 베푸시며, 악한 마음으로 패역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를 내리신다. 이것이 순리며, 이 원리에 따른 결과가 축복이다. 노동에 있어서도 땀 흘리며 일한 대가를 타인이 빼앗지 않고 정당하게 받는 것,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둬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그리스도인은 요행이나 술수로 부당한 이윤이나 이자를 통해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된다. 악인의 불의한 재물(미 6:10)은 오히려 그에게 저주가 된다. 물질이 복이 되려면 공평한 저울, 공평한 추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잠 11:1; 16:11).
셋째,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복의 근원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축복의 진정한 의미는 가시적이며 외형적인 부분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질적 차원을 넘어 영적 측면과 깊이 연결된다. 축복이 가장 빛나는 영역은 존재의 심연이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하나님 안에 거하는 축복
인간은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소멸과 절망의 늪에서 구출돼 영원한 소망과 생명에 이른다. 죄와 흑암의 그늘이 사라지고, 고통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역사(사 9:1), 그것이 축복의 씨앗이다.
주 예수의 은혜로 영원한 승리와 생명에 승선(乘船)한 자들이 누리는 영적 존재로의 변화, 그것이 축복의 열매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영광이야말로 이 땅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절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영적 호흡이 있는 자들이여,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