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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월호 보기 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
남자들이 홧김에 잘하는 소리가 있다. 바로 “자존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다. ‘자존심’이라는 말을 들먹이는 것은 그만큼 누군가에게 무시당했거나 무시당할 상황에 처했다는 증거다.
자존심과 어감이 비슷한 단어로 ‘자존감’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의미는 한 음절 차이를 뛰어넘는다. 누군가 내면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한 자아를 표현하는 단어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인가를 인식하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난도 자기 이해와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 간다.
반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스스로를 우상화할 여지가 많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심이 강하다. 자존심에는 ‘내가’라는 표현이 꼭 등장한다. 내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자존심이란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철저히 고집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무섭게 쏟아붓는 폭우도 시간이 지나면 그치기 마련인데, 자존심 때문에 관계를 무너뜨리고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남성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딛고 일어서 변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자존감이다.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들을 보면서 ‘저들의 승리가 자존심의 승리일까, 아니면 자존감의 승리일까’ 생각해 봤다. 만약 2010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불운했다고 하는 성시백 선수가 자존심을 붙들고 경기에 임했다면, 다른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면서도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까? 성 선수에게 자신이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과 확신이 없었다면 계속되는 도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쇼트트랙 5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자존심을 붙들고 중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내는 어리석은 일이다.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이뤄 놓은 일들에 대한 회고는 우리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자존감을 선물할 것이다. 중년의 시기에 다 같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존감의 수위를 높이며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