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숲길을 걸었다. 평온하고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내 삶의 주변에 이렇게 푸근하고 싱그러운 숲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까지 생겨났다. 30분쯤 지났을 때 비가 후두둑 내렸다.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피할까 생각하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빗방울이 약해서 그냥 걷기로 했다.
걷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드세졌다. 이미 땀을 흘리기 시작했기에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젖는 것은 마찬가지니 그냥 걸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비가 내리는 소리도, 나무 잎사귀와 비가 마주치는 소리도 작은 행복감을 가져다줬다.
늘 피하려고 했던 이 비가 왜 내게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일까? 나는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했다. 요즘 비는 산성비라는 생각에 피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생각이 나를 두렵게 만들어 나로 하여금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던 것이다.
비를 맞기 위해 길거리를 쏘다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가 두려워 문밖을 나서는 일을 주저하지는 말자. 인생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피할 길이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처럼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일들은 나이만큼이나 많아진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병환, 방황하는 자녀들, 인생의 환절기를 맞아 힘들어하는 아내, 이 모든 환경 속에서 혼자 깊은 한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는 나 자신….
아무리 노력해도 예방할 수 없고, 어떻게 바꿀 수 없는 날씨와 같은 삶의 문제들이 중년을 힘겹게 만든다. 어쩌겠는가? 내 인생에 비와 같은 현실이 다가올 때, 요즘 자주 사용하는 방법들이 있다. 문제와 대화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이다.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자녀들과 즐겁게 지낸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고인 물처럼 남겨 두고 상처로 만들기보다는 자신과 이야기하면서 퍼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두려운 것도 피하고 싶은 것도 점점 없어진다. 어떤 일 앞에서든지 당당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내게 웃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