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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렌즈를 주섬주섬 챙겨서 강화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인 몇 사람과 모처럼 출사를 나간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 한 부분을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다양한 해석들을 시도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냈다. 한여름 태양 볕이 두렵지 않은 오후였고, 시간의 흐름을 개의치 않아도 되는 하루였다.
남자들이 일상을 멈추고 쉼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일상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사물과 사람, 일을 다시 한번 살펴봄으로 소중함을 깨닫고 신중한 태도로 다가가게 된다. 따라서 ‘우선멈춤’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지친 마음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피곤한 것들로 여기며 생활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 낭비다.
얼마 전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고민하는 50대를 만났었다. 그에게서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준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 잠시 우선멈춤을 선언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하자고 말이다. 희망적으로 보이는 미래의 계획 속에 복병처럼 숨겨진 위험과 무모함은 없는지 찾아보고, 미비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내 제안을 자신의 계획을 걸어 잠그는 자물쇠로 여기는 듯했다. 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잠깐의 우선멈춤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는 것에 동의했다. 20대에는 열정이 무모함의 이유가 된다면, 50대에는 조급함과 두려움이 무모함의 이유가 된다. 중년의 새로운 출발은 청년 시절과는 다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운전을 하다 보면 위험 요소들이 있는 곳마다 ‘우선멈춤’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어린이 보호 구역이나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 앞에는 표지판이 없어도 스스로 속도를 낮추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만일 앞만 보고 맹목적으로 살아왔다면, 오늘 스스로에게 우선멈춤을 선언하자. 그리고 쉼을 통해 지나온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앞으로 달려갈 길을 준비하자. 나를 위한 여유를 회복할 수 있다면 우선멈춤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을 안전하게 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달려가려고만 하지 말고 우선 멈춰 서자. 그리고 전후좌우를 살핀 후에 신나게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