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퇴직 이후의 인생은 오지 탐험과 같다. 아무도 가 보지 않고,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리허설이 없는 생방송이기에 가혹하고 냉정하다.
남극을 탐험했던 세 명의 탐험가가 있었다. 영국 탐험가 로버트 팰컨 스콧,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 그리고 어니스트 새클턴이 그들이다.
가장 먼저 남극 탐험을 시작한 사람은 팰컨 스콧이다. 그는 1910년 테라노바 호를 이끌고 제2차 남극 탐험에 나서서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로알 아문센이 1911년 12월 14일에 먼저 도달해 2등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악천후를 만나 결국 식량 부족과 동상으로 4명의 동행자와 함께 사망하고 만다.
이들의 결과가 달랐던 이유는 준비의 차이였다. 스콧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준비했고, 아문센은 남극 현지 상황과 조건에 맞는 준비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인생은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고, 적합하지 않은 준비는 오히려 인생을 위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의 탐험은 위대하다. 스콧의 대원으로 시작한 첫 남극 탐험에서 괴혈병으로 도중 하차한 새클턴은 남극점 정복 대신 남극 대륙 횡단을 계획한다. 그는 27명의 대원과 함께 범선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세 번째 남극 탐험의 장정을 떠난다. 그리고 이 탐험은 새클턴을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탐험가, 지도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비록 대륙 횡단에는 실패했지만, 남극 빙벽에 갇혀 634일을 보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전 대원이 무사하게 귀환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아문센에게는 스콧에게 없는 주도면밀함이 있었다. 그러나 새클턴에게는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었다. 새클턴은 언제나 한발 늦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와 따뜻한 리더십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은퇴가 화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문센처럼 은퇴한 사람들의 경험을 잘 헤아려 듣고, 내게 생길 수 있는 위험들을 충분히 잘 대비하는 힘이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위기는 찾아온다. 새클턴처럼 한계 상황에 직면했을 때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에 마비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존중하고 꿈을 나누며 함께할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의 불모지를 푸른 초장처럼 즐겁게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