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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남편과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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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현재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치는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거울 속에 비친 중년의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마음은 그렇게 서럽고 허무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전에, 남편과 아버지와 나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숨고르기를 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어떤가. 인생의 반환점이자 하프타임(Half time)이라는 중년을 인생의 프라임타임(Prime time)으로 만들어 보라.
중년이라는 시간대는 인생의 프라임타임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노련미와 원숙미를 마음껏 발휘해 볼 때다. 중년을 인생의 프라임타임으로 만들 마음이 있다면 현재의 자기 모습을 냉엄하게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으로 그 첫 삽을 떠야 한다. 
북한산에 오르다 보면, 간혹 죽은 나무들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건강한 나무들 옆에 이렇게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흉물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북한산 관리자들은 이런 글을 붙여 뒀다.
“나무는 죽지 않습니다. 그대로 숲의 일부가 됩니다.”
나무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말라 죽어서 쓰러지게 되면, 나무는 산에 사는 벌레들의 좋은 먹을거리가 되거나 버섯들의 집이 되기도 하면서 생장하는 나무들에게 더없이 좋은 거름이 된다고 한다. 살아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죽어서도 천천히 숲의 일부로 흡수되는 것이다.
남자들의 운명도 이와 같다. 생장을 멈췄다고 나무가 숲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듯, 남자들 역시 직장에서 물러났다고 삶에서도 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자라온 그대로 흔적을 남기며 숲의 일부가 되듯이, 남자들의 흔적 역시 인생이란 숲에서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젊은 날, 건장한 나무로 인생이란 숲을 지켜왔는가? 그렇다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남자의 삶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인생의 숲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 아들에게, 또 그 아들의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