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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왔다.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한 시간째 동네를 서성거리고 있어예.” 경찰이 출동했다. 그 할머니는 “내 딸이 아기를 낳아 병원에 있다”는 말만 했다. 자신의 이름이나 주소조차 몰랐다.
보따리를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할머니를 파출소로 모시고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이름과 사는 곳을 기억해냈다. 모라동에 사는 A 할머니. 경찰은 모라동 주민센터를 통해 딸과 아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연락처를 알 수가 없었다. 은행 거래처 파악에 나섰고, 연락처를 얻어냈다. 할머니의 딸이 출산을 해 한 병원에 입원 중이란 사실도 알아냈다. 순찰차에 태워 오후 7시쯤 병원으로 안내했다,
할머니는 갓 낳은 아기와 함께 누워 있는 딸을 보자 보따리를 풀었다. “어서 무라(어서 먹어라).” 보따리 안에는 미역국, 나물반찬, 흰 밥, 이불 등이 있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임에도 자신을 위해 미역국을 품에 안고 온 엄마를 본 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이 사연을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소개했고, 사흘 만에 조회 수 40만 건을 넘었다.
이 이야기는 지난 9월 20일 한 일간지에 소개된 사연이다. 치매를 뛰어넘는 모성애! 그것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맹목적이다. 그리고 절대적이다. DNA에 새겨져 있다. 살아가는 법은 머릿속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사랑하는 법은 몸속 근육에 남아있다. 근육의 힘은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게 했다. 장을 보고, 쌀을 씻고, 미역을 불리고, 가스레인지를 켜서 국을 끓인다. 나물을 볶고, 흰밥을 담고, 보따리를 싼다.
물건 잃어버리는 게 특기인 치매 엄마는 보따리를 가슴에 품는다. 젖먹이를 품에 안듯 그렇게 꼭…. 딸을 만난 엄마는 보따리를 풀며 사랑도 푼다. 이제 자식이자 엄마인 딸은 엄마의 사랑을 먹고 엄마가 돼 그 사랑을 이어간다.
모성애는 하나님 사랑의 모형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이 가능하도록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설계하셨다. 따라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핑계할 수 없다. 내 이름 기억하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러니 내가 치매 환자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사랑해야 할 누군가를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