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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책임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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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의 정서 치유를 위한 ‘애도 세미나’를 개최했다. 엄마와 딸이 참가했다. 두 달 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우울증이 찾아왔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온종일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깥에 나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다.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다. 보다 못한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것이다.
그 어머니의 핵심 정서는 후회와 죄책감이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신체가 이완되면서 깊숙이 잠겨 있던 감정의 문이 열렸다. 꽁꽁 묻어 뒀던 말들을 꺼냈다.
“여보, 그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해. 밥을 차려 줬어야 했는데, 당신 많이 피곤해 했는데 한 달 내내 밥 차리기 귀찮아서 떡 들려 보내 정말 미안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말없이 가져가던 당신, 미안해. 말 안 하고 무뚝뚝하다고, 돈 많이 못 벌어온다고 불평했던 것 미안해. 시집 와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나를 참아 주고 가르쳐 주고 다독여 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해 주지 못하고 떠나보내서 미안해. 요즈음은 매일 숨을 쉬는 것이 당신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당신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고 그리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더 좋은 아내가 됐을 텐데…. 당신이 정말 보고 싶어. 아침에 눈 뜨면 하루를 어떻게 살까 싶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못다 한 작별인사를 했다. 단 두 마디였다.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녀는 이 말을 하며 감정의 덫으로부터 해방됐다. 다시 살 힘을 찾아갔다. “여보, 힘내 볼게요. 당신 몫까지 아이들 잘 키울 테니 날 좀 지켜 줘요.” 
살아생전에 이 아름다운 말을 배웠더라면…. 오늘도 집집마다 서로를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기 바쁜 부부들이 넘쳐난다. “당신이 게을러서, 당신 성질이 더러워서, 당신이 돈을 제대로 못 벌어 와서, 당신이 정리정돈을 못해서….”
이 끝도 없는 전쟁이 끝날 때가 온다. 죽음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말할 것이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매일 죽음을 연습하며 살 수만 있다면, 바로 지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