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아들을 양육하는 엄마다. 상담하는 내내 흐느꼈다.
“원장님, 얘가 아무것도 안 해요. 학교도 안 가고, 온종일 집에서 잠자고 게임만 해요. 억지로 학교에 보내도 아무 소용없어요. 선생님께 전화가 와요. 학교에 안 왔다고. 요즈음은 죽고 싶다는 소리도 자주 해서 학교 가란 말도 못하겠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의 고백이 이어졌다. 걸음마 시작할 때부터 온종일 영어 테이프를 틀어 놓고, 영어책 읽어 주고, 영어 방문교육을 시킨 이야기. 3살부터는 어린이집, 4살부터는 발레, 영어, 피아노, 수영까지 학원 4개를 다니게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수학과외까지 시켰는데 별말 없이 잘 다녔단다.
문제가 생긴 건 중학교부터였다. 학원 가기를 싫어하고 공부도 싫어하더니 지금 상태가 된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다. “제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그렇죠?”
맞다. 빨리, 먼저, 남들보다 앞서 가게 하는 것이 부모 역할이라 착각한 결과다. 때를 앞당겨 과잉 공급하는 바람에 스스로 자라고 싶은 욕구를 꺾어 버렸다.
성장이 더뎌 죽은 듯 보이는 중국 대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씨앗은 땅에 심는 즉시 수면에 들어간다. 햇빛, 물, 흙, 영양 모두 최상으로 공급하고,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이런 수면 상태는 5년 동안 지속되다가 정확히 5년이 되면 이후 1년 동안 급속히 자라 자그마치 18미터나 되는 큰 나무가 된다. 하지만 수면 기간에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결코 큰 나무가 될 수 없다. 정원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돌보는 일을 계속하며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린다.
최악의 정원사도 있다. 싹도 트기 전에 비료를 듬뿍 줘서 영양 과잉으로 썩게 만든다. 겨우 싹이 하나 움텄는데 큰 화분에 옮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싹 틔우기를 포기하게 한다. 이러니 뿌리 내리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숙성 재배가 아니라 속성 재배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정해진 때에 스스로 자라나는 아이를 빨리, 앞서, 먼저 가라며 영양을 과잉 공급한다.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때를 앞당기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아니, 앞당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속성 양육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움직이고 멈췄다.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것, 숙성 양육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대신해주면 스스로 못한다. 기다려 주면 스스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