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21년 08월

형을 다시 만날 날

과월호 보기 김현건 집사(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몇 년 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형이 보고 싶은지 묻는 내게, 어머니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20년 전 회사를 다니며 신학 공부를 하던 형은, 어느 날 《기도》의 저자 리처드 포스터에게 배우고 싶다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쓰시겠다면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미국행 편도 비행기표가 형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이었던 어머니는, 매일 새벽 형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형의 학비를 공급하시며, 대학원 입학, 결혼 등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셨다.
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형에게 잠시 한국에 다녀갈 수 있겠느냐고 연락을 했다. 한 달 후에 형은 한국 동두천 미군 부대의 군목으로 발령받아 2년 동안 근무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지금도 동두천 미군 부대에서 형을 다시 만난 날을 기억한다. 어머니와 형은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있었고, 나는 하나님의 섬세하신 사랑에 감사를 올려 드렸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일하신 것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형이 유학 비자가 연장되지 않아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돌아가지 못 할 수도 있는데 왜 들어왔는지 묻는 내게, 형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거면 다시 미국으로 인도하실 거라고 했다. 그리고 1년 후 형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형이 한국에 있었던 1년 동안 나는 결혼을 했다. 그때 형이 없었다면 어머니와 나만 있는 쓸쓸한 결혼식이 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1년은 하나님께서 유학 생활에 지친 형에게 쉼을 주시고, 동생 결혼식에도 함께하게 하신 축복의 시간이었다. 형은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미국 군목으로 10년 넘게 사역을 하고 있다. 지금은 형과 멀리 떨어져 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또 어떻게 만나게 하실지 기대하며, 눈동자같이 우리를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