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의 독신 여교사.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우울증이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노모를 13년 동안 모시다 작년에 떠나보낸 직후 발병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1년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병간호에만 매달렸다. 한평생 어머니를 미워하고 증오했던 딸이었다. 어머니가 불륜으로 낳은 딸이 자신이었다. 이혼을 당한 어머니는 딸의 아버지에게서도 버림받았다. 상처는 깊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아버지를 저주하고 욕했다.
병상에서도 어머니는 불평만 했다. 그녀는 이런 어머니를 ‘내 십자가’라 생각하며 초인적인 힘으로 보살폈다. 도움 받을 곳 하나 없이 24시간 어머니 곁을 지켰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허리와 목을 크게 다쳤지만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는 딸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하고, 정말 수고 많았다.” 혈압이 떨어져 의식이 없는 어머니에게 딸도 작별 인사를 했다. “엄마랑 같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제 걱정 마세요.” 그러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너무 고생한 탓이라 여겼다. 잘 가셨다 싶었다. 이제 새 삶이 찾아오나 싶었다. 그러나 장례식 치른 후 텅 빈 집에 들어온 그녀는 그 길로 쓰러져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탈진증세(burnout symptom)가 찾아온 것이다.
크리스티나 마슬락은 이렇게 설명한다. “탈진, 이 말은 꺼지려고 가물거리는 불꽃을 연상케 합니다. 빈 껍질, 싸늘하게 식어가는 재. 한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열정을 불태워 나중에는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상태가 돼버린, 물이 다 증발한 주전자, 배터리가 바닥난 상황…. 바로 이런 상태입니다.”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은 연약한 육체로 겨우 숨만 몰아쉬던 그녀는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주님을 만났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던 주님의 눈을 보았다. 그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딸아, 얼마나 힘드니?”
통곡이 터져 나왔다. 창자가 끊어질 듯 쏟아내는 깊은 울음과 함께 상처 난 감정들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리움, 떠나보낸 슬픔,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 이제 그녀는 안다.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자기를 대신해 탄식하며 간구하는 성령이 있음을. 홀로가 아님을 확인한 그녀는 씩씩하게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