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20만원이라니!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쓴 거야?” 남편이 식탁 위에 영수증을 던지며 다그쳤다.
“어디다 쓰긴, 다 쓸 데 썼지.” 아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왜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많이 썼냐고!”
당황한 아내가 말꼬리를 돌리며 오히려 공격한다. “오늘 골프 모임은 어땠어? 돈은 얼마나 들었지? 30만원? 40만원? 당신 취미 생활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알아?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래?”
“난 지금 불필요한 지출에 대해 말하는 거잖아!” 남편이 소리를 높였다.
“왜 내가 하는 지출만 불필요하다는 거지?” 아내가 받아쳤다.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뒤틀리고 있었다. 꼬이고 비틀린 감정에서 나오는 말은 비수처럼 서로의 가슴을 파고든다.
“하여튼 이러니 헤픈 여자란 소릴 듣지.”
헤픈 여자란 말에 아내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지금 뭐라 그랬어? 헤픈 여자라고? 이 쪼잔한 남자야! 마누라가 돈 쓰는 것까지 그렇게 간섭해야 시원해? 하여튼 속 좁은 건 알아준다니까!”
“무슨 여자가 나긋나긋한 맛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아득바득 덤벼들기나 하고 말이야. 하여튼 악처가 따로 없다니까!”
방문을 꽝 닫고 나가는 아내의 등 뒤로 남편이 소리쳤다. “당신이 돈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결국 둘은 대판 싸운 끝에 별거에 들어갔다.
판단과 업신여김과 조롱이 난무한다. 낭비, 불필요, 헤픈 여자, 쪼잔한 남자, 속 좁은 남자, 간섭, 나긋나긋한 맛이라고 하나도 없는, 덤벼들고, 악처….
머리에서 만들어진 판단은 입술로 옮겨와 업신여김으로 나왔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거라고. 그러나 둘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판단과 업신여김의 부산물로 인해. 앞당겨 받은 심판이다. 만약 바로 지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고 앞당겨 생각하면 판단의 틀은 사라지고, 업신여김은 존중으로 바뀔 것이다. 부부의 도를 회복하는 순간, 심판대는 사라지고 십자가가 도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