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동작치료를 진행했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껌을 짝짝 씹으면서 들어왔다. 나름 최선을 다해 수업을 했다. 그러나 매번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에도 반응이 없었다. 화가 났다. 차라리 포기할까 했다. 결국 내가 준비한 것들을 포기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했다.
분노 조절은 아이들에게 필수적인 훈련이다. 분노 폭발이 폭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기 신체를 조절할 수 있으면 정서도 조절 가능하다. 마침 주제가 ‘move & stop’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는 ‘move & stop’의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신체가 저절로 움직였다. 자발성과 창조성이 최고로 발휘됐다. “강아지 꽃이 피었습니다”, “토끼 꽃이 피었습니다”, “지렁이 꽃이 피었습니다” 등 끝도 없는 아이템들이 나왔다.
나는 점차 내면작업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가족 꽃으로 한번 해 볼까? 가장 생각나는 행동이 무엇이니?” 다양한 묘사가 이어졌다. “코 골며 잠자는 아빠 꽃이 피었습니다”, “접시 깨뜨리는 엄마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하는 오빠 꽃이 피었습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동생 꽃이 피었습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서로를 보면서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럼,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 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이들의 속마음을 주문했다. “잔소리하는 엄마 꽃이 피었습니다”, “뺨 때리는 아빠 꽃이 피었습니다”, “술 먹고 소리치는 아빠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힘이 들 때는 어떤 꽃이 필까?” 즉시 답이 나왔다. “시들어진 꽃이 피었습니다”, “시험 망쳤다고 혼난 꽃이 피었습니다”, “왕따 당한 꽃이 피었습니다” … “죽고 싶은 꽃이 피었습니다.” 움직임이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얘들아, 이 친구에게 어떻게 하고 싶어?” “혼자 피어있는 꽃이 아니라 함께 피어 주는 꽃이 되고 싶어요.”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주위에 둘러섰다.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어깨에, 허리에, 머리에, 등에 손이 올라갔다. 천천히 쓰다듬었다. 눈물이 맺혔다. 흐느낌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가해자인줄 알았더니, 이들도 피해자였다. 이렇게 아파하고 있었다. 함께 울어 줄 누군가를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