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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가 세상을 마무리하고 천국 가는 날에 대해서는 생각 자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소망하는 저 천국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일어날 많은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매월 많은 보험금을 붓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온전한 안식과 회복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런데 누구도 이 축복된 순간에 대하여 기대나 설렘을 갖지 않는다. 누구든지 이 땅에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복음 안에서 보면 죽음 자체도 축복이다. 죽음을 맞이한 성도의 장례식장에 가면 믿음의 사람이 걸어간 흔적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분주함을 멈추고,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어떻게 정리되고 마무리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보면, 자신이 죽은 뒤에 치러질 장례식을 자신이 살았을 때 미리 치룬 경우를 소개한다. 저자 미치앨 봄은 책의 끝 부분에 스승 모리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진정으로 그리워할 스승이 있었는지? 혹시 운이 좋아서 그런 스승을 찾아낸다면, 그에게 다시 가는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노은사의 일생 마지막 강의는 1주일에 한차례, 선생님 댁의 서재 창가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작은 화분에 핀 분홍빛 히비스커스 꽃을 볼 수 있는 그곳에서. 수업은 화요일에 있었다. 책은 필요 없었다. 강의 주제는 인생의 의미. 선생님은 경험에서 얻은 바를 가르쳤다. 그 가르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호람은 자신이 무고한 형제들과 신하들을 죽인 것처럼 그 역시 아라비아 군대의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까지 유린되고, 왕궁의 보물과 처자식을 빼앗기게 된다(대하 21:16~17). 또한 창자에 중병이 들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데(대하 21:18), 이러한 여호람의 죽음에 대해 성경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대하 21:20)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왕은 백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남자들이여, 내 인생이 마무리되고 천국 가는 날,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나의 죽음에 어떻게 반응할까? 나의 미래 장래식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행복할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자.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