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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을 찾으라면 아직도 대부분은 예수 믿는 남자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이 소중한 삶의 가치를 포기한 듯싶다. 술 마시는 것을 이제는 암암리에 인정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고서 살아가는 것일까?
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노아는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장막에 누워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노아의 수치를 조롱한 둘째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창 9:20~27). 이사야는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사 5:11)과 포도주를 가져와 독주를 잔뜩 마시는 목자들(왕들, 사 56:11~12), 포도주와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옆걸음 치는 제사장과 선지자(사 28:7)를 책망했다. 하박국은 술을 즐기는 자를 거짓되고 교만한 사람과 같이 취급했다(합 2:5). 잠언은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잠 20:1)이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잠 21:17)라며 무절제한 음주를 통렬히 비난했다. 또한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 23:31)라고 경고했다. 나실인은 포도주, 독주 및 포도원에서 나는 어떠한 소출도 입에 대지 않았다(민 6:3).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경건 생활(벧후 3:11~13)에서 술을 입에 대고, 술에 취하며, 술 중독 증세를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죄이며, 옳지 않다. 성경은 음주가 경건 생활에 막대한 손상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보여 준다. 욥기 12장 25절과 시편 107편 27절은 술 취한 사람은 비틀거린다고 했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는 것은 단정하게 살아야 할 신앙인의 몸가짐이 아니다. 잠언 23장 29~32절은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상처가 다 술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술은 마침내 사람을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쏠 것이라고 했다.
남자들이여,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 기준을 갖고 있는가? 믿음의 영웅들은 세상을 따라가지 않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 기준이었다. 술을 다스릴 수 있다거나 마셔도 절제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자. 내 연약함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지 술 마실 이유가 되지 못한다. 술 마셔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세상 가운데 술 안 마시고 제대로 사는 남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자. 내 삶이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