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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는 과정 중 경험하게 되는 일이 사랑니를 뽑는 일이다. 그러나 막상 치과에 가서 의사에게 입을 벌리는 것이 부끄러워 입을 꽉 다물고 있다면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다. 안면몰수, 체면상실 상태로 의사 앞에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남자들은 흔히 위기에 봉착하면 웬만한 통증은 참아 내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나름의 기특함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서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가상한 용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용기만으로는 풀 수 없음을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해 배우게 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에게 협박과 조롱을 받은 히스기야는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3절)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 나라를 버리시고 보호의 손길을 거두셨기에 대적으로부터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고 탄식한다.
히스기야의 절망을 전해 들은 이사야는 그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예언한다. 즉 랍사게의 위협과 조롱에 두려워하지 말 것과 앗수르 군대가 철수할 것, 그리고 앗수르 왕이 반역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대가를 대적에게 지불하게 하셨다는 승리의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히스기야는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왕들의 어떤 행위와 선택이 지금의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게 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4절)라는 선지자의 권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 산헤립의 편지를 펴 놓고 기도한다. 자신이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절망하게 되는 이유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기도한 것이다.
남자들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과 자신의 문제를 감추지 않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절망을 펴놓고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16절)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 소망의 꽃을 피우신다.
남자들이여, 절망이 찾아왔을 때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는가? 하나님은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 못하는 과묵한 육신의 아버지와 같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절망의 문제를 용기 있게 펴 놓자.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자.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펴 놓는 순간, 은혜의 햇살이 문제 가운데 비칠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될 때, 절망적인 인생에서 소망 넘치는 인생으로 궤도 수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