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1년 02월

염려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과월호 보기

매사에 염려가 많은 남자들이 있다. 매일매일의 경쟁 속에서 야기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생활 속 염려로 자리 잡는다. 염려는 흔들의자와 같이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그리고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마비시켜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만든다. 게다가 염려는 문제를 부풀려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염려하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진다. 마음속에서 염려를 계속하면 할수록 어느 순간 작은 것들까지 염려거리가 되어 버린다. 염려클럽의 준회원에서 정회원으로 완전히 똬리를 틀고 만다. 그러다 보면 산더미만 한 걱정거리에 눌려 마음은 최악의 상태가 되고 만다.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시기 위해 모인 큰 무리에게 떡을 먹이는 일로 질문을 던지셨다. 빌립은 갈릴리 출신이라 시장이나 지리 정보에 밝았다. 빌립의 믿음을 시험하시려는 예수님은 그에게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한 현실적인 염려에 대한 대답을 들으셨다. 필요한 떡의 양을 대략이나마 계산할 수 있는 빌립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안드레 역시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포도주 사건(2:1~11)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현실적인 계산에 매여 있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폐렴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늘 불안해하며 염려했던 한 여성이, 마침내 70세에 이르러 죽었다. 그런데 진단 결과 밝혀진 것은, 그 여인은 감기를 폐렴으로 염려하면서 33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다. 염려란 배워서 하는 것이지 타고날 때부터 저절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다.
염려는 하나의 생각에 관련된 버릇이다. 염려는 수년 동안 되풀이된 실수와 실패와 충족되지 못한 기대 때문에 생겨난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대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경험하면서부터 염려의 버릇이 형성된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염려 가운데 살 수밖에 없다.
남자들이여, 염려한다고 달라진 것이 있었는가?(마 6:27~28) 염려는 믿음 없음의 증표이다.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염려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만다. 내가 염려에게 정복되지 않도록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