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동과 언어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과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목표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 남자들이 직장을 다닐 때와 퇴직한 후를 비교해 보면 생활 방식에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예수님의 선포는 지극히 파격적이었다. 형식에 매여 살던 당시 종교인들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포는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종교적 자유’(33절)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죄로부터의 영적 자유를 의미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틀을 안정망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식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지나친 자의식과 형식에 매여 사는 사람들을 보시며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다”라고 지적하신다(37절).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차이는 아버지가 다르다는 사실에 있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8절).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예수님을 거부하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아비 마귀의 뜻을 따라 욕심대로 행하고자 한다(44절).
이는 크리스천 남성들과 불신 남성들의 생활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크리스천 남성들은 내 방법이나 감정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기준과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삶의 기준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 또는 내가 남들에게 좋게 보일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다.
남자들이여, 당신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가? 아니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가? 아니면 죄의 굴레를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고 싶은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나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