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든든한 일이다.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라면 마음의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가까이하셨던 한 가족이 나온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 옥합을 부어 주님의 죽음을 예비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신 후 유대로 가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유대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난 뒤였다. 적극적인 성품의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와,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부활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참된 소망을 주신다.
이후에 마리아가 달려 나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울자, 예수님은 비통하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다(33, 35절).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참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부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마르다를 위로하셨던 예수님은, 눈물 흘리는 마리아를 위해서는 같이 울어 주심으로 위로하셨다.
사랑은 내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내 방식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깨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 때문이다. 즉,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확실한 부활 소망을 심어 주시는 데 집중하셨다.
마침내 예수님이 나흘 동안 사망 가운데 있었던 나사로를 부르시자, 나사로는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로 사건을 통해 그 가족과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다 말씀해 주신 것이다.
남자들이여,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기질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함을 알고 있는가? 섬세한 사랑은 섬세한 행복의 출발점이다. 마리아와 마리아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셨던 예수님처럼 서로의 특별함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것이 사랑이다. 위로를 주는 섬세한 사랑은 헤아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