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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아빠, 엄마, 내일이 내 생일이잖아요? 여자 친구가 나한테 생일선물을 주고 싶데요. 잠깐 선물만 받고 올 게요.”
그렇게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계 바늘은 새벽 한 시를 가리켰다. 연락도 없다. 걱정이 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으로 나왔다. 아파트를 여러 차례 맴돌다 출입문 앞에 앉았다.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렸다. 두 시쯤 돼야 아들은 돌아왔다. 남편과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들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머릿속에는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춤을 추며 혀끝을 맴돈다. “도대체 지금 몇 시야? 아니 선물 받는 데 한 시간이 걸려, 두 시간이 걸려? 너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고 이제 온 거야?” “죄송? 죄송하다면 다야? 자기 입으로 한 말도 제대로 못 지키는 애가 뭘 제대로 하겠어? 꼴 보기 싫으니까 들어가 자!” “밤늦게 여자나 만나러 싸돌아다니고, 너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래?” “너 그 말 지금 진심으로 하는 거니? 딱 보니 야단맞는 거 피하려고 잔머리 굴리고 있네.”
판단의 말들이다. 분명 훈계를 위해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들은 존재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분명 아이의 행동은 잘못됐다. 그렇다 해서 아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작품이다. 부모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작품을 훼손할 자격은 없다.
판단을 접으니 평화가 찾아왔다. “네가 연락도 없이 늦으니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걱정이 돼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추위에 떨며 너를 기다리는데 화가 나더구나.”
아들은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여자 친구가 생일날 제일 먼저 선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어요. 그래서 차 안에서 12시 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복음성가 CD를 받았는데, 곡이 너무 좋아서 듣고 이야기하다 보니 늦었어요. 금방 올 거라 생각해서 핸드폰 안 챙긴 건 제 불찰이에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미는 CD를 틀어 보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흘러나왔다. 하마터면 아이를 판단함으로 인해 나를 정죄할 뻔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