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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신분도 변했고 그가 입은 옷도 변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뿍 담긴 채색옷에서 종의 옷으로, 그리고 급기야 죄인의 옷으로 갈아입혀져 감옥에 갇혔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다. 이제 아무 소망이 없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깨 버리신다. 우리에게는 필경 사망의 길(잠 14:12)처럼 보이지만, 요셉에게는 감옥이 꿈의 문턱이었다.
인생 막장과 같은 감옥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뤄 가신다. 요즘 경제 현실과 같다. 무엇 하나 소망이 보이는 게 없다. 직장도, 자녀들의 교육도, 나의 노후생활도 암담하기만 하다. 세상의 잣대로 현실을 바라보면 그 생각 자체가 감옥일 때가 많다. 우리가 소망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은 일하신다.
위기 가운데 있는 남성들을 향한 위로가 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39:21) 하셨다. 하나님이 위기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감옥에 들어왔다. 요셉은 그들을 섬겨야 했다.
요셉은 성실을 양식으로 삼아 살아온 인생이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자랑이나 하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디발의 집에서부터 나타났다. 성실하고 겸손하게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요셉은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요셉의 해석대로 꿈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러나 복직된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다. 요셉은 그 후로 만 2년 동안 묵묵히 감옥 생활을 했다. 길고 긴 기다림 속에 있던 요셉은 결정적인 순간에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된다.
만약 요셉이 감옥에 갇힌 현실을 비관하며 자기 연민과 자포자기에 빠졌다면 술 맡은 관원장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까? 우리 주변에도 범죄한 관원장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작은 친절과 배려가 나의 꿈을 이뤄 주는 고속승강기가 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라.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내 인생의 꿈을 이뤄 주는 조력자들이다(롬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