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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희망’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갖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모든 게 좋을 때 희망적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맞기도 하지만 한편 틀리기도 하다. 희망은 잘될 때 갖는 것이 아니라, 절망으로 가득 찬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 준비해 주거나 이뤄 줄 수 없는 것이다. 내 희망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희망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희망은 고정적이지 않은 특성도 있다. 희망은 바뀔 수 있다. 희망이 바뀐다고 누가 나에게 도덕성을 논하며 탓하지 않는다.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또 다른 희망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희망은 연속성을 갖고 있다. 이미 이뤄진 희망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 다음 단계에서 이루고 싶은 일들이 또다시 희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희망처럼 힘든 단어도 없다.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이루기 위한 희생 없이는 희망이 현실이 되기 어렵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찾아낸 아름다운 꽃과 같고, 어둠 속에서 찾아낸 빛과 같은 것이기에 절망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위기감 있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불안해할까? 내 삶을 돌아보며 그 이유를 찾아봤더니,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나 사건, 지위들을 희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망은 현실 개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찾아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내 안에 있는 희망을 만나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희망이 내게 찾아와 “당신의 희망은 이런 것들이다”라고 속삭여 주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희망을 말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오늘을 힘 있게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현실은 늘 힘들고 어렵다. 그 어려움들을 이기고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일의 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희망이다. 아침마다 내 안에 있는 희망을 만나는 사람은 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