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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과 둘만의 데이트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딸아이가 힘들었던 순간에 내가 했던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지 못해 속상해할 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내 방식으로 딸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한 제자의 장례식에서 “슬픔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겠어요. 슬픈 만큼 많이 우세요”라고 말해 줬다. 장례식이 끝난 후 만난 그 제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장례식에 오신 분마다 어머니께서 오래 사시다가 좋은 곳에 가셨으니 울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말들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딸인 제게는 고스란히 상처가 됐어요.”
이처럼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지도하는 듯한 어투로 위로할 때가 많다. 제자의 말을 듣고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들을 되새겨 보니, 자녀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을 억누르는 위로를 했던 것 같아 깊이 반성했다.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강의에 참석한 여대생은 제대로 위로 받은 자신의 경험을 잘 제시해 줬다.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하고 돌아와 새벽 2시에 아버지를 깨워 “나 너무 힘들어!”하면서 엉엉 울자, 아빠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 곁에 앉아서 등만 다독여 주셨다고 한다. 딸은 그때 아빠가 가장 큰 위로가 됐다며,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
아들에게도 아빠의 위로는 인생 전환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한 아빠는 자신의 잘못으로 고개를 숙인 아들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 줬다고 한다. 아들은 자신이 혼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말 없이 안아 준 아버지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더 노력하며 살게 됐고, 아버지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라면 누구나 다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사랑의 기술로 자녀를 위로해 주는 법을 아는 아버지는 흔치 않다. 위로는 그 사람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마음의 자리에 내려가 그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자녀를 위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