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베드로를 중요한 인물로 다룬다. 그중에 요한복음은 베드로에 대한 기록이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복음서와 구별된다.
십자가의 증인으로 준비된 베드로
요한복음에서 베드로는 13장, 즉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그 이전까지는 단 두 곳에서 살짝 언급될 뿐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함께한 베드로에 대해 침묵하던 요한복음은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 곧 수난주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그를 등장시킨다.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 13:6~9).
이로써 베드로는 예수님과 자신이 어떤 관계에 있게 될지,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수난이 필수라는 사실에 대해 보다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듣는 인물이 된다. 또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부당한 체포와 심문, 처형을 당하신 고난의 길(via dolorosa)의 생생한 증인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직접 확인하는 중요 인물이 된다.
요한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생을 주신 구세주이심을 증언할 최선의 인물로 기록돼 있다.
십자가의 증인으로 부름받은 베드로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 13:37)라고 했던 것과 달리,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이 같은 부인 행위는 사복음서에 기록될 만큼 명백한 사실로, 그날 이후 지금까지 온 인류에게 알려진 부끄러운 사건으로 기록됐다. 얼마나 후회가 됐을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한 베드로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보다 더한 충격을 느꼈을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신 21:23)라는 율법 아래 매여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은 상상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으니 그 충격은 어땠을까? 하지만 베드로는 그제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직면한다. 예수님을 따르기는커녕 알지도 못했던 무지하고 미련한 죄인이라는 자신의 민낯을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진짜 모습에도 눈을 뜬다. 자신이 생각하던 대로의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이 직접 말씀하신 예수님, 곧 죽었다가 부활하신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참 메시아이심을 깨닫는다. 드디어 베드로는 예수님의 참된 모습도 알게 되고, 자신의 모습도 직면하게 된다.
이제 베드로가 할 수 있는 반응은 무엇일까? 그것은 원래 하던 어부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
이 말은 그가 예수님을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참 메시아이심을 알게 됐기에 자신은 도저히 그분을 따를 자격과 힘도 없음이 명백해졌다는 자기 이해인 것이다. 곧 자신이 죄인이요, 약한 자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이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절망하면서, 예수님을 철저히 유일한 구세주로 알게 됐다.
놀랍게도 베드로가 이토록 절망에 빠진 지점은 진정한 소명의 자리가 됐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 21:15~17). 다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하고, 확신하는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는 당혹스러움을 겪더라도,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받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베드로를 통해 깨닫는다.